노시훈의 테마기행/2016~20년 25

눈 먼 자들의 도시

동백에 매화에 개나리 진달래 벚꽃 여행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야 마땅할 이 시기에 할 일이 없어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시의적절(?)한 책으로 골라서…2020년, 올해의 첫 여행은 책입니다. 함께 가실까요? ^^어떤 식으로든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내 격리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어쨌든 치료법이 발견되거나 이 병의 발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더 이상의 전염을 막기 위해 관련된 사람들을 격리하자는 것이었다. 이 병의 전염성이 일단 확인되자, 환자들은 수학에서 복비례라고 부르는 비율에 따라 증가했다.(pp.58~59.)무섭게 퍼져나가는 전염병의 공포가 예전에 읽은 소설 하나를 소환해냈다.이 책을 읽은 때가 2015년 새봄이 시작되던 요 무렵쯤이었다. 베스트셀러인지..

구름에서 궁집을 보다

궁집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어려운 화두에 답을 내기 위해 찾아간 곳은 경북 안동입니다.안동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가장 한국적인 곳을 찾아서 방문했을 만큼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의 고장이지만, 우리가 이 도시를 찾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서였습니다.'전통리조트'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한옥 단지입니다. 전통리조트……다소 진부한 듯 들리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시설의 성격에 딱 맞는 타이틀입니다.전통만을 이야기하기엔 편의사양을 비롯한 시설 활용이 너무나 현대적이고,리조트를 강조하기엔 외관상 지나치게(?) 번듯한 전통 가옥입니다.'한복 신사' 같은 느낌의 말맛이랄까? 작명에 많은 고심이 있었을 걸로 짐작됩니다.작명뿐이겠습니까? 리조트를 계획하고 입안하고 조성하고 운영하..

이런 집은 없었다. 이것은 궁인가 집인가?

'이번 정류장은 궁집앞입니다.' 평내동 부근을 지날 때 버스 안내방송으로 나오는 이 이름이 오래 전부터 무척 궁금했습니다.자료를 뒤져보니 오래된 한옥 여러 채로 구성된 문화재라고 하던데, 개인 소유라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한 후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만 지니고 있었습니다.그러다, 오늘 마침내 보고야 말았습니다. ^^여기 들어가보고 싶어서 남양주 지역역사 연구모임에 가입했거든요. 궁집은 남양주시 주관으로 내년(2020년)까지 정비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저의 힘도 일부나마 보태질 겁니다. 궁집이면 궁이야? 집이야? 궁처럼 지은 집입니다.말장난 같죠? 정확히는 나라에서 궁궐 짓는 목수를 보내 지어준 집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같으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 대상입니다만 ^^전문가의..

대한독립만세 답사기

삼일만세 100주년을 맞은 2019년.기념으로 삼일만세 답사를 다녀왔습니다.마침 전날이 2‧8독립선언일이었네요.제가 인솔한 건 아니고 지인이 진행하는 행사에 슬쩍 따라갔습니다.바로 이 분「강남의 탄생」의 저자 한종수 작가가 오늘의 인솔자입니다.안국역 3번 출구 '천국'의 문앞에서 일정 시작합니다.첫 번째 코스는 김수근의 공간 사옥과그 옆 집, 현대 계동사옥입니다. 사실 둘 다 삼일만세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장소이지만 그래도 이 지역을 답사하노라면 공간사옥은 흔히 들르는 곳입니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주인공들이 근무하던 장소로 나왔다네요.현대 사옥이 있는 곳은 예전 휘문고가 있던 자리입니다. 해방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이 곳에서 그 유명한 여운형의 대중 연설이 있었죠. 여운형의 집이 있..

무작정 평창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앞으로 올림픽을 직접 볼 날이 있을까?' 그래서 同처자하고 평창으로 달렸습니다.표는 있냐구요?'당연히' 없지요.폐막을 이틀 앞둔 2월 23일 12시경, 평창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평창에서 열리는 경기가 없는고로, 주경기장이 있는 올림픽플라자를 이리저리 둘러볼 계획입니다. 입장료는 2천원.자원봉사자들이 건네는 인사는 '아리아리'인데, 입에서 쉽게 나오지는 않지만 일단 발음은 쉽고 편하네요. ^^올림픽플라자에 들어가면 재입장 불가라길래 근천 분식집에서 만두와 도너츠로 일단 점심부터 먹었습니다.눈에 보이는 아무 집에나 들어갔는데 운좋겠도 꽤 알려진 집이 걸렸네요. 맛집이라고 추천해도 손색없겠어요. 40년 전통의 '용평손만두찐빵'.주경기장은 닫혀 있고 그 앞에 성화는 활활(?) 타..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

2018년 1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을 마침내 이루고야 말았습니다.백제의 고도 부여. 나라 잃은 설움을 3천 장의 꽃잎으로 날렸다는(물론 뻥이지만) 바로 그 곳에서 풍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뜬다뜬다뜬다!떴다아~~~내친 김에 80일간의 세계일주나 다녀올까요?왼쪽 끝단의 보일랑말랑한 지점이 낙화암입니다. 그 아래 강은 당연히 금강, 혹은 백마강.부여 상공을 날다보면…백제역사재현단지도 보이고정림사지도 보이고궁남지도 보입니다. 연꽃이 없으니 꼭 추수 끝낸 논 같습니다.지붕이 알록달록한 부여 시가지. 다음지도 스카이뷰를 보는 것 같죠?한번 비교해보실까요?많이 비슷하죠? 계절 차이와 내려다보는 각도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면 누가 봐도 같은 장소 아닐까요? ^^가장 높이 올라 부여를 한번 조망..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17.에필로그 - Let it be Mongol

호텔 조식을 각자 자기 방에서 먹었다. 룸서비스를 받은 것은 아니고, 체크아웃 시간이 너무 일러서 아침밥을 준비할 수가 없다고 호텔 측에서 전날 미리 샌드위치를 하나씩 넣어 준 것이다.그렇게 이른 시간에 호텔을 나서 징기스칸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에 내렸다. 몽골에 비하면 여전히 후텁지근한 날씨였지만 내가 한국에 없는 사이에 무시무시한 폭염은 일단 지나간 듯했다.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몇 시간 만에 문자와 카톡이 밀린 고지서처럼 쌓였다. 고객님 어쩌구 하는 문자가 절반, 지인들의 안부 문자가 절반이다. 대체로 오늘 내일쯤 귀국하는 것을 아는 사람들인지라 오면 만나자는 연락이 대부분이었다.몽골에서 대박 한번 내보라는 격려의 문자도 있었다.실제로 대박의 꿈을 안고 몽골을 들락거리는 한국인들이 많다...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16.열 사흗날 – 초원에서 도시로, 몽골에서 러시아로

어제 숙소는 우리가 묵었던 곳 중에서 두 번째로 열악했다. 이곳엔 도마뱀도 없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양쪽 다리에 빼곡히 온통 벌레 물린 흔적이다.해돋이의 감동마저 없었다면 이번 숙소(바양블락)를 아마도 최악으로 기억했을 것이다.해돋이만큼은 엊그제 차강소브라가 해넘이에 버금갈 정도의 장관이었다. 이시백 작가는 이런 일출은 처음 본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몽골에 15번째 왔다는 분이 처음 보는 풍광이라면 나같은 사람에게는 행운의 아침이 아닐 수 없다.초원에서 마지막 짐을 싸서 숙소를 나서다가 문기둥이 희한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세상에! 규화목이었다. 나무가 그대로 굳어 돌이 되었다는, 1억 년을 헤아리는 규화목이 숙소의 문지기로 서 있었다. 천년 된 은행나무로 집을 짰느니 하는 소리는 몽골에선 꺼내지..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15.열 이튿날 – 조장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차강소브라가를 나서 바끄가즐링촐로로 가는 날.열흘 이상의 여행일정 중 막바지 이틀을 남겨놓은 경우 대개는 아쉬움 반, 집생각 반이다.나? 나는 아쉬움이 더 크다. 솔직히 한 보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집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집생각 2, 아쉬움 8.출국하는 날 이 비율은 어떻게 변할까?바끄가즐링촐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곳에서 처이린사(Цойрын хийд)라는 규모가 꽤 큰 사원을 만났다.사회주의 시절 몽골의 불교는 거의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승려들은 근로인민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혁명 분자들이다. 1937년 무렵 스탈린 시절에는 무려 28,000명에 이르는 승려와 정치인이 숙청됐고 수많은 사원 중 단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체되고 불태워졌다. ..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14.열 하룻날2 – 흐미 잡것!

차강소브라가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른다. 다른 명승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기도 하고…어쨌든 차강(Цагаан)이 들어가면 몽골에서는 일단 좋은 것이다. 몽골의 상징과도 같은 게르는 예외 없이 흰색, 즉 차강이다. 전통적으로야 그렇다 쳐도 염색기술이 발달한 요즘이라면 색색의 예쁜 게르가 한 채쯤 있을 만도 하지만 흰색 이외의 게르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몽골인들의 일상 음식이자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 그 자체인 수테차와 마유주도 흰색이다.‘흰 달’이라는 뜻의 차강 사르(Цагаан сар)는 몽골의 설날이다. 이 날 우리의 떡국과 만두처럼 준비하는 것이 흰색의 보츠(찐만두)이다. 집에 따라서는 수천 개를 빚는다고 하던데 그게 어느 정도 분량이 되는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질 않는다.현재 사용중인 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