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훈의 테마기행/2016~20년

이런 집은 없었다. 이것은 궁인가 집인가?

kocopy 2025. 4. 9. 16:42

'이번 정류장은 궁집앞입니다.'

 평내동 부근을 지날 때 버스 안내방송으로 나오는 이 이름이 오래 전부터 무척 궁금했습니다.

자료를 뒤져보니 오래된 한옥 여러 채로 구성된 문화재라고 하던데, 개인 소유라 들어가 볼 수 없다는 걸 확인한 후로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만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마침내 보고야 말았습니다. ^^

여기 들어가보고 싶어서 남양주 지역역사 연구모임에 가입했거든요. 궁집은 남양주시 주관으로 내년(2020년)까지 정비를 마치고 일반에 개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마 저의 힘도 일부나마 보태질 겁니다. 

궁집이면 궁이야? 집이야?

 궁처럼 지은 집입니다.

말장난 같죠? 정확히는 나라에서 궁궐 짓는 목수를 보내 지어준 집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같으면 고위공직자 비리수사 대상입니다만 ^^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예산 추사고택이나 서울 운현궁도 궁집이지만 이들은 모두 본래 있던 집을 궁궐 목수가 수리한 집이고 없는 집을 새로 지은 경우는 남양주 궁집이 현존 유일이라고 합니다. 민속문화재 제130호(1984년 지정)입니다.

 그렇다면 궁집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지어준 집일까요?

 조선왕조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 자리에 있었던 영조(재위:1724~1776)는 31세부터 83세까지 무려 51년 7개월간 장수왕(?)으로 재임하다보니 환갑에도 자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낳은 막내딸 화길옹주(1754~1772)를 12세에 시집 보내며 이 집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참고로 영조는 딸복이 많아서 2남 12녀를 두었는데 딸들은 모두 화자 돌림입니다. 화억, 화순, 화평, 화협, 화완, 화유, 화령, 그리고 막내 화길까지…

이름이 전하지 않는 4명과 첫딸 화억옹주는 요즘말로 영아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궁집은 문화재로 지정된 궁집 자체(약 839평)만을 뜻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 옮겨와 지은 여러 채의 한옥과 주변 임야를 아우르는 궁집 권역(약 8000평)을 뜻하기도 합니다. 보통은 후자가 익숙합니다.

임야로 둘러싸인 곳이 궁집 권역이고, 내부의 노란 동그라미가 문화재로 지정된 궁집입니다.

궁집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와 빌딩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대개 빌딩숲 속의 섬 같은 옹색한 처지가 되고 맙니다. 

은평뉴타운 속의 섬, 금성당(중요민속문화재 258호)처럼 말이죠(위 두 사진). 

하긴 뭐 이런 곳도 있습니다. 웨스틴조선호텔, 롯데호텔, 프레지던트호텔의 3각 호위를 받는 옛 환구단의 황궁우는 보기에도 짠합니다(첫 번째 사진 출처는 문화재청 홈페이지).

그렇지만 우리의 궁집에선 도심의 느낌을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시각적으로는 분명 그렇습니다.

무성한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든 작은 숲이 궁집의 외곽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서는 순간 시야에서 도심이 사라진다."

장소성 면에서 요즘 이런 문화재 지역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서울에서도 창덕궁 후원 정도에서만 누릴 수 있는, 매우 드문 호사입니다. 

야트막한 동산쪽으로 올라가야 비로소 도심 풍경(?)이 살짝 비칩니다.

이렇듯 좋은 궁집에서 오늘(10월 30일)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궁집에서 남양주만의 문화의 길을 찾다.' 

지역 내 예술인들이 모여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요기에. 

행사는 군산집을 배경으로 조성된 작은 노천극장에서 진행됐습니다. 객석 역할을 하는 돌계단이 세월의 때를 묻혀 어느새 한옥과 조화를 이루니 이것도 그냥저냥 퓨전인가 봅니다.

군산에 있던 집을 옮겨와서 군산집이라 불린다네요.

다른 곳에서 옮겨온 집이 몇 채 더 있습니다.

이 집은 용인에 있던 친일파 송병준의 가옥이라서 용인집이라 불립니다. 

궁집 본채의 담장과 붙은 왼편 집은 무교동에서 옮겨왔대서 무교동집이라고 부릅니다. 낙지 팔던 집은 아닙니다.

궁집 공간에 이렇듯 한옥 콜렉션이 만들어진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화길옹주의 시댁, 능성 구씨 소유였던 궁집은 서양화가 권옥연이 1971년 매입하여 부인 이병복과 함께 거주하며 여러 채의 한옥을 주변 임야에 차근차근 옮겨 지으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2011년부터는 무의자문화재단을 설립하여 관리해왔다고 합니다. 두 분은 지난 2011년과 2017년에 각각 돌아가셨고 묘소는 궁집 관내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분들도 모 대통령 내외처럼 남녀가 뒤바뀐 듯한 이름입니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짧아진 가을 해가 이런 멋진 실루엣을 만드네요.

 

후에 산너머살구 회원들을 모시고 답사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궁집의 의미와 더불어 이주 가옥들의 사연을 발굴해서 재미난 스토리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집의 원조 주인 능성 구씨의 왕실혼사 이야기도 함께 들려드리고 싶고…
구씨 가문은 안 반가워할지 몰라도, 다들 남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잖아요. ^^

어서 정비를 마치고 문을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궁집.

기억해주세요!

 

들어서는 순간, 시야에서 도심이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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