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강소브라가를 나서 바끄가즐링촐로로 가는 날.
열흘 이상의 여행일정 중 막바지 이틀을 남겨놓은 경우 대개는 아쉬움 반, 집생각 반이다.
나? 나는 아쉬움이 더 크다. 솔직히 한 보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집생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집생각 2, 아쉬움 8.
출국하는 날 이 비율은 어떻게 변할까?

바끄가즐링촐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곳에서 처이린사(Цойрын хийд)라는 규모가 꽤 큰 사원을 만났다.
사회주의 시절 몽골의 불교는 거의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승려들은 근로인민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혁명 분자들이다. 1937년 무렵 스탈린 시절에는 무려 28,000명에 이르는 승려와 정치인이 숙청됐고 수많은 사원 중 단지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체되고 불태워졌다. 몽골의 인구가 채 100만 명에 못 미치던 시절이었으니 당시 숙청의 규모가 어땠는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때 궤멸된 것은 지상으로 드러난 몸통과 줄기 부분이었고, 뿌리는 여전히 살아 숨죽인 채 동면중이었다.



처이린사는 몽골에서 규모가 꽤 큰 사원으로 꼽힌다. 사원에서 조금 떨어진 들판에 초소형 고인돌 같은 반석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위에 검붉게 퇴색한 사체의 일부가 보였다. 조장(鳥葬)의 흔적이다. 확인이라도 해주듯 새가 한 마리 날아와 앉긴 했다.

사회주의 시절, 조장은 없어져야 할 악습으로서 금지됐다. 탈공산화 이후에 금지와 처벌은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조장이 부활한 것은 아니었다. 처이린사처럼 큰 사원에서 큰 인물이 입적한 경우에 지금도 가끔 하는 정도이다. 새들이 자신의 영혼을 안식처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는 망자에게는 조장이 가장 큰 예우이자 축복이다. 너무나 진부한 말이지만, 문화는 상대적이다. 누구의 노랫말마따나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독일의 남녀혼탕을 처음 본 외국인은 깜짝 놀라지만 독일인을 미개하다고 욕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삶의 방식은 시절과 환경에 따라 변한다. 남녀혼탕이든 조장이든 개고기든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서서히 사라지게 돼 있다. 그때까지는 그들 고유의 생활방식으로서 존중해주어야 한다. 존중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간섭하고 비난하지는 말아야 한다. 당신이 커피잔을 들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 것을 흉보거나 제지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올 때 들렀던 바끄가즐링촐로를, 갈 때 다시 들렀다. 열흘 만이었지만 산천은 의구했고 인걸도 그 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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