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창(네이버 연재)

짚풀생활사박물관

kocopy 2025. 3. 4. 09:57

지난주에 소개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단히 특이한 소재의 박물관이 하나 있다. 새학기를 맞아 아이들과 함께 가볼 만한 박물관, 짚풀생활사박물관이다.
한양도성박물관에서 출발하면, 볼 것 많은 대학로길을 따라 30분쯤 걷게 되며 지하철을 타면 4호선으로 한 정거장 구간이다.

짚풀생활사박물관 관람 후기를 한 문장의 카피로 표현하자면,
‘한국의 현대생활사는 짚을 해체해온 과정이다’.

멍석, 광주리, 조리 등 다양한 짚풀 제품
이엉을 얹고 있는 낙안읍성의 초가

대략 1960~70년대까지 한국사회의 의식주 필수품 내지는 소소한 생활 소품은 대부분 짚풀 공예의 부산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탈농경과 도시화를 겪으며 짚풀 제품은 화학제품으로 하나둘 대체되기 시작한다.
초가에 지붕을 얹던 이엉은 시멘트 슬라브, 개량 기와, 슬레이트도 대체되고, 짚신이나 미투리는 고무신, 구두, 운동화로 바뀐다. 마당에 까는 멍석이나 물건을 담아두는 망태기, 삼태기, 광주리, 가마니 등은 모양만 같은 플라스틱 응용 제품으로 대체된다.
방을 쓸던 빗자루, 문 앞에 걸린 발, 부엌에서 쓰던 조리 등을 비롯해서 마당의 닭둥우리(둥지), 달걀꾸러미, 강아지집, 냇가에 놓던 통발 등도 요즘은 웬만하면 플라스틱 제품이다. 도롱이와 삿갓은 우비와 우산이 됐다.

수백년 이상(아마도 천년 이상) 한국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생활용품은 상당수가 짚풀 공예품이었는데 지난 몇 십 년 동안 아주 급격하게 플라스틱류로 대체돼 왔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짚을 해체해온 이 급격한 변화를 unzip(앞축풀기)의 역사라고 한다면, 아재개그로 몰릴까? ^^

양옥 건물들 사이의 외로운 한옥 파사드. 눈에 확 띈다는 장점은 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혜화동로터리에서 창경궁과 성균관대 방향의 측면 도로가에 자리 잡고 있다. 얕은 오르막길 초입에 서면 팔작지붕 한옥 기와가 쉽게 눈에 띈다. 근방에서 기와지붕은 여기 한 곳뿐이다. 한옥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붕을 비롯한 건축부재만 한옥이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 한옥마을에 흔히 있는 개량형 한옥을 생각하면 된다. 처마에 이어붙인 함석판 빗물받이가 눈에 띄어서 유사성이 더욱 짙게 드러나 보인다. 이곳에 본래 자리 잡은 집이 아니라 해체된 한옥 부재를 옮겨다 조립하지 않았나 나름 ‘추측’해본다. ㄱ자형 건물이라 자연스럽게 네모난 마당을 만들어낸다. 마당에 멍석을 깔면 야외체험 내지는 박물관 행사가 가능하고 주변의 휴게공간과 툇마루에 앉으면 간이 휴식처가 된다.

ㄱ자형 개량 한옥으로 지은 박물관 별관. 체험관과 기념품 판매점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과 사무동을 겸하는 5층 콘크리트 건물이 본관이고, 체험 코너와 출입구가 있는 곳이 한옥 별관이다.
두 건물은 서로 연이어져 있지만 기능상 동선이 연결돼 있을 뿐이고 디자인 측면의 연속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시는 본관 지하1층부터 시작된다. 지하로 내려가는 동선상에서 석인상(벅수), 절구, 돌확, 맷돌 등이 도열하듯 관람객을 맞이한다. 통로를 이용한 일종의 야외전시이다.

지하1층 제1전시실로 내려가는 본관 계단
제1전시실에는 한눈에 조망되는 네모난 공간에 짚으로 만든 생활공예품이 실물로 전시돼 있다. 유리 진열장 안에 실물 오브제가 들어 있고 그 옆에 설명글을 적어 놓은,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전시 구성이다.

체험 관람을 신청했거나 10인 이상 단체관람인 경우 학예사의 동행으로 전시해설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학예사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해설이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아이들, 즉 관람객의 호응이 별로 없어서인데 사실 짚풀공예에 관한 전시 해설이라면 이 박물관의 학예사 이상 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해설을 못 했다기보다는 생전 처음 보는 멍석, 키, 삼태기 등이 아이들의 관심영역 속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눈높이와 경험의 문제라고 본다.
어디 집풀공예품뿐이랴? 농기구를 비롯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에 대해 어린이 관람객들이 무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때에 체험형 전시가 그나마 대안일 것이다. 생활공예 전시는 용도를 경험해보는 것이 제일이다. 관람객들이 직접 멍석을 펴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해설을 듣는다거나 망태에 물건을 담아보고 키질을 해보고 도롱이 입고 삿갓 써보는 등.
박물관 측의 현실적인 고충은 이해한다. 우리나라 관람객이 대체로 터프한지라 이런 식으로 체험 관람을 진행했다가는 아마도 삼태기가 열흘에 하나 꼴로 못쓰게 될 게 뻔하다.
아무튼 ‘저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제1전시실에서는 짚으로 만든 멍석, 삼태기, 광주리, 짚수세미, 조리, 방석, 시래기 꾸러미, 닭장, 달걀꾸러미 등 짚으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을 실물로 관람할 수 있다. 짚으로 만든 닭장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는데 짚으로 만든 개집도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이걸 딱 보는 순간 히트상품을 예감했다. 온습도가 유지되니까 강아지의 건강에도 좋고 개집의 모양도 예쁘다. 손재주만 있으면 내가 만들어서 내다 팔고 싶은 심정이다.

또 눈에 띄는 물건은 제주도에서 전래되던 애기구덕이다. 길쭉한 광주리 중간에 짚으로 그물망을 쳐놓은 제주도식 요람인데, 여기 누워 있으면 한여름에도 아기가 땀띠 날 일이 절대 없을 듯하다. 오줌도 밑으로 흘러서 여름철에 기저귀를 채우지 않아도 되고.
‘짚풀공예의 꼬임새와 엮음새’라는 코너가 있는데, 새끼가 만들어내는 문양이 어쩜 저렇게 예쁠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생활 속에서 이런 공예품들을 보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미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짚풀공예의 꼬임새와 엮음새 코너
바깥 계단을 통해 한 층을 오르면 제2전시실이다. 계단마다 다양한 형태의 다듬이돌을 전시해 놓아 지루하지 않게 올라갈 수 있다.

제2전시실도 형태와 전시 내용 면에서 제1전시실과 유사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생활용품보다는 짚을 소재로 만든 공예 작품들의 비중이 높다는 정도.
1전시실은 실용품, 2전시실은 작품, 크게 구분하면 그렇다.
짚으로 만든 황소, 다양한 탈, 그리고 멱서리(뒤주와 유사한 기능) 등의 작품이 걸려 있다.

전시물 중에는 짚으로 엮은 가마니도 있었는데, 여기서 퀴즈 하나!
우리나라 가마니의 역사가 얼마나 됐을까?

왼쪽부터 차례대로 짚독(1), 가마니와 섬(2)

놀랍게도 100년 조금 넘었다는 사실!
박물관에 적힌 설명글에 따르면 가마니는 일본말로 가마스(かます)라고 하며 19세기 말 일본 상인들이 우리 쌀을 가져가지 위해 들여왔다고 한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보편화됐으니 일종의 ‘귀화 생활용품’인 셈이다.
조선 후기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서 쌀가마니, 소금 가마니가 등장한다면 연출이 잘 못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가마니 이전에는 곡식을 사고팔거나 세금을 낼 때 반드시 섬에 담았고 1섬에 10말 혹은 그 이상을 담았다고 한다. 섬보다 크기가 작고 씨줄과 날줄로 더 야무지게 만든 것이 가마니이다. 조선에서 수탈한 쌀을 배에 실어 일본으로 가져가려면 가마니가 더 유용하지 않았을까?

 

본관 관람을 마치고 처음 입장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 나오면 전시실 겸 체험실 공간인 한옥관이다. 벽면을 두른 진열장에는 뒤웅박, 떡살과 다식판, 연과 얼레, 소반, 두레박, 장기판, 바둑판, 갓, 대야, 횟대 등 각종 민속생활용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처럼 전시실의 역할도 하지만 이 공간의 본래 용도는 체험실이다. 보리컵받침 만들기, 달걀꾸러미 만들기, 빗자루 만들기 등 각 시간대별로 다양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유료이다.
기념품 판매점에서는 짚으로 만든 각종 공예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짚신 한 켤레 사고 싶었는데 꽤 고가였다. 흔히 신는 브랜드 운동화보다 약간 싼 가격 ^^

짚으로 만든 다양한 기념품

박물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짚풀생활사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볏짚 전문박물관이라고 한다.
짚풀 공예품을 전문적으로 모아서 실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가치가 큰 박물관이다. 반면 박물관이 너무 정적이라는 점은 아쉽다. 짚풀 공예는 생활용품이므로 생활 용도를 보여주는 연출이 있다면 전달이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관람객들이 잠시 쉬는 공간에 멍석을 깔아 놓는다든가, 짚신이나 미투리를 실내화로 제공한다든가, 전시실 안내 태그를 짚으로 엮은 입체글씨로 붙인다든가…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이야기할 때 빼놓아선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다음 주에는 ‘이 분’과 깊이 연관된 또 하나의 박물관을 찾아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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