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창(네이버 연재)

금강문화관

kocopy 2025. 3. 5. 13:32

금강변 백제보 근방에 자리한 금강문화관
금강변 백제보

신동엽문학관이 있는 부여읍내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 금강 상류 방향에 금강문화관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금강에 대해 전시한 박물관이다.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강이다. 금강에는 금강문화관이 있고 한강에는 한강문화관이 있고 낙동강에는 낙동강문화관이 있다. 영산강에도 영산강문화관이 있다.
이름을 통해 전시 내용을 대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큰 강 네 곳(순위는 아님)의 물길을 손보고 다듬어서 치수 사업을 완수하겠다고 벌인 국책사업이 4대강 사업이다. 그리고 이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4개의 홍보관이 강문화관이다.

물을 맑게 하여 환경을 개선하고 수자원을 늘리고,
물을 많이 확보하여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고,
주변을 정비하여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부흥에 이바지하겠다…
고 시행한 사업이다.
이 목표를 이뤘느냐? 그에 앞서서 이 목표가 과연 진정한 사업 목적이었느냐?
……에 대해선 말을 않겠다. 곧 다 밝혀질 걸로 보인다.

금강문화관은 금강의 물길을 따라 공주에서 부여로 막 넘어온 초입에 자리 잡고 있다. 금강에 설치한 3개의 보-세종보, 공주보, 백제보 중의 가장 하류에 있는 백제보 좌측 편에 있다. 백제보의 우측 편, 즉 금강 건너편은 행정구역상 충남 청양군이다.
금강문화관 건물을 들어서면 작은 로비가 나오고 정면으로 낯익은 분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금강문화관 전시실 입구에 걸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초상. 사진 밑에는 도산 안창호의 ‘강산개조론’이란 제목의 연설문이 소개돼 있다.

(중략)… 이제 우리나라에서 저 문명스럽지 못한 강과 산을 개조하여 산에는 나무가 가득히 서 있고 강에는 물이 풍만하게 흘러간다면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큰 행복이 되겠소. 그 목재로 집을 지으며 온갖 기구를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하여 온갖 수리에 관한 일을 하므로 이를 좇아서 농업, 공업, 상업 등 모든 사업이 크게 발달됩니다.
…(중략)… 만일 산과 물을 개조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자연에 맡겨두면 산에는 나무가 없어지고 강에는 물이 마릅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큰비가 오면 산에는 사태가 나고 강에는 홍수가 넘쳐서 그 강산을 헐고 묻습니다. 그 강산이 황폐함을 따라서 그 민족도 약하여집니다. 그런즉 이 산과 강을 개조하고 아니함에 얼마나 큰 관계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다른 문명한 나라의 강산을 구경하면 우리 강산을 개조하실 마음이 불 일 듯하시리라.

 

4대강 사업의 정당성을 민족의 큰 지도자에게서 찾은 거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선경지명을 구현하는 일이 4대강 사업이다.’ 이런 착안을 해낸 담당자는 아마도 쾌재를 불렀으리라.
이 연설문이 발표된 때가 1919년이다. 당시는 서구의 과학문명이 이룬 인류의 진보가 발달을 거듭하여 결국은 유토피아를 이루어낼 것이라는 근대적 문명관이 대세이던 때였다. 강의 둔치를 시멘트로 깔끔하게 정비해서 강물이 관리되고 있는 미국의 강을 보았을 때 안창호 선생께서는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부러워하셨을 거다.
그땐 그랬다. 수로처럼 관리되는 강이 오랜 시간 뒤에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악을 가져오는지 알지 못했던 때다. 이 시대에 자연습지의 중요성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무지이지만 잘못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습지의 역할을 애써 무시한다면 그건 무지 이전에 죄악이다.
100년의 시차는 강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 측면에서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이걸 무시하고 ‘100년 전 우리의 큰 지도자는 이런 혜안을 지니셨고 그에 따라 우리는 이렇게 실천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견강부회다.

안창호 선생을 바라보며 왼편, 복도를 따라 전시가 시작된다. 기다란 복도의 양옆 벽면을 따라 수백 개의 투명 아크릴 원통이 붙어 있고, 각 원통 속에는 관람객들이 만든 종이배가 하나씩 들어있다.

전시가 시작되는 복도식 진입부
개별 원통 속에 소망을 적어 넣은 종이배

배는 강을 상징한다. 메시지를 적어 넣은 종이배를 통해 희망을 띄운다는 연출 의도로 보인다. 이른바 관람객 참여형 전시이다. 관람객을, 관람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게끔 참여시키는 것! 모든 전시기획자가 가진 공통의 고민이다.
사실 전시뿐만 아니라 스포츠 이벤트 분야에서도 어떻게 관객을 참여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최대의 난제다. 야구장에서 커플 관객의 화면을 전광판에 띄우고 사랑고백 타임, 키스 타임 등을 강요(?)하는 것도 이런 고민의 흔적이 아닐까?

금강의 서정과 문학을 전시한 코너
4대강 사업의 효과를 홍보하는 전시 코너. 연이은 포켓 전시실이 보인다.

전시실은 중앙 동선을 사이에 두고 왼편에는 금강에 대한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이야기와 자연환경 및 역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고, 오른편에서는 주로 금강의 활용, 치수사업, 4대강 사업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설명과 개별 영상으로 소개되고 있다.
포켓식 공간이 인상적이다. 각각의 전시 공간을 반 독립적으로 구획하여 옆 부스로부터 소리와 빛의 간섭을 받지 않고 관람할 수 있는 시설로 조성했다.
4개의 포켓이 담은 전시 내용은 각각 강과 문명, 치수사업, 보(희망의 물그릇), 4대강 네트워크(자전거길 등) 순이다.

한 층을 내려오면, ‘이게 도대체 뭐지???’ 싶은 전시 코너를 만날 수 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닿는 길이로 무수히 많은 투명섬유가 기다린 국수발처럼 늘어져 있을 뿐, 그 외엔 어떤 것도 없다.

PVC를 비추는 빛이 마치 바다 속에서 수면을 올려다본 듯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역광 앞에선 어떤 피사체라도 실루엣으로 연출된다.(사진: 김윤아)

정면의 좁은 통로를 통해 빛이 들어오므로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열리고 닫힌다. 빛의 대비로 인해 이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외관은 검은 실루엣으로 보인다. 이 실루엣이 섬유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나면 그 모습도 사라진다.
소리와 빛으로 물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연출한 건데, 어떠한 IT 기술도 활용하지 않은 순수 아날로그 연출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작품의 재료가 투명 섬유라서 이런 셀카도 가능하다.

요즘도 가끔 부여 쪽에 갈 일이 있으면 이 작품만을 보기 위해 금강문화관엘 들른다.
작품의 제목은 '게이트', 부제는 '물속으로'.
일본의 설치미술작가 도쿠진 요시오카의 작품이다.

PVC 투명 섬유가 재료의 전부로서, 설치 인건비를 빼고 나면 재료값은 몇 백만 원 수준일 텐데 예술작품으로 연출되면 수억 원짜리가 된다.
‘예술을 원가로 따지면 안 되지만…’

전시관을 나서면 강쪽으로 전망대가 서 있다. 조형적으로 꽤 볼 만한 백제보의 모습과 금강의 풍광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중앙 엘리베이터나 야외 계단으로 오르면 되는데 계단으로 오를 경우엔 전망대 문이 열렸는지 미리 확인할 것을 당부드린다. 계단으로 36m를 올랐다가 문이 잠겨서 도로 계단으로 내려오는 불행한 방문자는 내가 마지막이어야 하므로.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백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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