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창(네이버 연재)

강원도탄광문화촌

kocopy 2025. 3. 3. 16:09

기록적인 한파는 물러갔다지만 여전히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강원도탄광문화촌.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박물관 창조도시’ 영월군의 박물관이다. 군 전체가 오지인 영월에서도 손으로 꼽는 오지, 북면 마차리에 자리 잡고 있다.

영월광업소 사무실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탄광을 소재로 하는 박물관은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다. 태백, 정선, 삼척, 문경, 보령, 화순 등 한때 석탄 좀 캤다 싶은 지역은 예외 없이 석탄박물관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이들과 비교했을 때 ‘영월탄광’은 일반인들에겐 조금 생소하며 실제로 규모도 작다.

영월탄광은 영월화력발전소에 연료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1935년에 영월광업소라는 이름으로 탄을 캐기 시작했다. 그 당시 탄을 캐던 갱도는 갱도체험관으로, 영월광업소 사무실은 탄광생활관으로 꾸며놓았다.

바로 이 탄광생활관이 다른 지역의 석탄박물관과 비교되는 차별 요소이다. 태백, 문경, 보령 등지의 석탄박물관이 대체로 석탄 자체를 전시 소재로 하여 석탄의 생성 원리라든가 석탄의 용도와 생산품, 탄광 현황 등을 전시한데 비해 영월의 탄광문화촌은 석탄을 캐던 광부들과 그들이 살아가던 탄광촌의 일상을 재현하고 있다.

석탄의 생성 원리, 석탄의 용도와 생산품, 탄광 현황 등을 전시한 문경석탄박물관

탄광생활관에 들어서면 영월군 마차리 지역에서 석탄을 캐던 당시의 생생한 생활 모습을 접하게 된다. 시간 기준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그때를 아십니까?’, ‘엄마 어렸을 적에’ 류의 일명 ‘추억을 파는 박물관’이다.

전시 코너명을 살펴보면 전시 내용을 대번 짐작할 수 있다.

배급표 받는 곳, 마차상회, 양조장, 이발관, 광부사택, 공동변소, 공동수도, 배급소, 복지회관, 마차초등학교 교실, 마차리 버스 정류장 등이다.

그러므로 본 박물관 내부는 탄광촌이라는 고립된 공간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의 시설이 망라된 60~70년대 ‘영월군 마차리 탄광촌’이다. 수돗가에서 씻고, 구멍가게에서 물건 사고, 대폿집에서 한잔 하고, 이발소에서 머리 깎고, 집에서 밥 먹고, 아이들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딱딱하고 건조하게 시공간을 단순 재현한 것이 아니라 해학과 익살 위주로 꾸며놓았다. 공동변소의 문틈 사이로 안쪽을 훔쳐보는 아이라든가(어른 같으면 변태가 된다), 퇴근 후에 방에서 화투 치는 아저씨라든가, 주전자 들고 양조장 앞에서 술 기다리는 아이라든가, 그리고 벽에 붙은 영화 포스터와 낙서 등등.

1960~70년대 영월군 마차리 탄광촌을 재현한 전시실

사실 이런 박물관들은 전국적으로 꽤 많다. 관심 있는 분들께 참고가 될까 싶어 몇 곳 나열하자면, 파주 헤이리의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을 비롯하여 북촌생활사박물관(서울 북촌), 한얼테마박물관(경기 여주 대신초 옥촌분교 자리), 해금강테마박물관(경남 거제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두루뫼박물관(경기 파주 법원읍), 추억의박물관 정선이리랑학교(강원 정선 방제리), 와보랑께박물관(전남 강진 도룡리), 송광매기념관(대구 덕곡동), 한림민속박물관(경남 김해 퇴래리), 선녀와 나무꾼(제주시 선흘리) 등등 뒤져보면 아마도 수십 군데가 넘을 것이다.

이들과 비교하여 강원도탄광문화촌은 특정한 시공간으로는 한정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탄광생활관을 나와서 길을 따라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갱도체험관이 나온다. 이곳은 당시 탄을 캐던 갱도를 그대로 전시관으로 꾸며놓은 시설로서 철로 위에 놓인 광차가 있고 그 위에 석탄이 가득 실려 있다.

석탄이 실물인지 모형인지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찍어보는 관람객들이 상당수 있는데, 괜히 손가락만 더러워진다. 단위 무게로 따졌을 때 석탄만큼 저렴한 물건도 드물다. 그리고 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걸 모형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당연히 석탄은 실물이다.

갱도 초입에 있었던 연락사무실이 있고, 쭉 걸어 들어가면 막장까지 이를 수 있다. 막장인생, 인생막장의 어원을 여기서 확인하게 된다.

실내 공간을 너무 깔끔하게 꾸며놓아서 갱도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크게 나지는 않는다. 바닥은 반짝반짝하는 우레탄 마감이고 벽면도 말끔하다. 벽이나 바닥을 그대로 뒀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밖에 야외전시가 있다. 갱도를 출입하던 광차, 인차, 그리고 권양기, 압축기, 환풍기 등을 볼 수 있다. 탄광문화촌 전체가 가볍게 거닐기 좋은 작은 공원이다.

마차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마치 야외전시처럼 꾸며놓은 가게는 실제 고기도 팔고 술도 파는 영업장이다. 작년 11월에 인기 방송 프로그램「알쓸신잡2」가 다녀가면서 더 유명해졌다.

전시 내용과 같은 컨셉으로 구성한 선술집 겸 구멍가게, 마차집
마차집에서 진행된 알쓸신잡2 영월 편(출처: tvN 홈페이지)

‘지나간 세대에게는 아련한 향수와 감흥을,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탄광 문화에 대한 이해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복합 체험 공간’

영월군에서 말하는 본 시설의 설립 목적이다. 강원도탄광문화촌은 대체로 이런 설립 목적에 부합하고 있다고 본다.

반면 아쉬운 점도 있다. 당시 탄광촌과 그 구성원들의 소외와 희생은 모두 가려지고 낭만과 추억만을 보여준다는 점.

지금도 탄광은 돌아가고 아직도 연탄을 때는 가정집은 꽤 있다. 연탄을 들여놓으며 겨울채비를 하고 있는 2017년 12월의 서울 성북동 북정마을

탄부들의 삶을 막장인생이라고 한다.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이니까 시쳇말로 갈 때까지 간 곳이라는 뜻이다. 광부의 삶이라는 것이 일단 육체적으로 고되고, 때론 생명의 위험을 감수할 만큼 대형 사고가 많고, 직업병의 후유증까지 있다. 그리고 알려진 것만큼 고수익도 아니라고 한다.

채탄 작업은 갑, 을, 병 3교대 근무니까 근무시간은 1일 8시간이다. 그런데 광부 일이라는 게 출근과 동시에 일 시작하고 일 끝나면 바로 퇴근하는 작업이 아니라서, 입갱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나 퇴갱 후에는 할 일이 꽤 많다. 개인별 채탄량을 확인받고 장구류 탈착하고 간단한 샤워까지 마치면 통상 광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1일 12시간 가까이 된다.

그리고 사고발생률이 대단히 높은 작업이다. “어느 탄광의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3일 만에 5명의 광부가 구조되고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태다.” 이런 뉴스를 예전엔 흔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진폐증이라는 무서운 직업병을 가진 작업이다. 진폐증은 폐 속에 탄가루가 많이 쌓여서 생기는 질병인데 수년 혹은 십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 발병하는 일이 많아 산재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았다.

고통스런 탄광촌의 기억은 한 세대가 지나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만으로 남았다. 그 시절 탄광촌의 뜨거운 삶의 현장들이 석탄박물관 혹은 탄광문화촌이라는 이름의 문화시설로 거듭나는 것, 그 자체는 바람직한 변신이다.

하지만 막장인생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생존의 절규는 가려지고, 그때의 역사는 단지 기념품이 되고 말았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아쉬움이야 어떻든, 연탄은 뜨겁다. 물리적으로도 뜨겁고 정서적으로도 뜨겁다.

그래서 안도현 시인은 묻는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군산 근대문화거리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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