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훈의 테마기행/2012~15년 23

우천재의 하루밤, 한옥 숙박의 묘미

식구들 데리고 우천재에 1박 하러 왔다가 좋은 구경했습니다. 우천재 바로 옆(돌담사랑)에서 내일 야외 결혼식이 있고 오늘은 함이 들어가는 날입니다. 제가 결혼하던 14년 전만 해도 '함사세요' 소리를 흔히 들었었는데 그 소리 못들은 지가 5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이게 뭔지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느라 애먹었습니다.한옥에서 숙박하면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한옥 숙박을 해보지 않은 분들은 자칫 애엄마와 아이들이 꺼리지 않을까 염려들 하시는데 여자들과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화장실과 샤워실입니다. 사실 이것만 수세식이면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이전에도 고택 숙박을 몇 번 해본 터라 아무 저항 없이 따라 나서더군요. ^^사실 예천에는 초간정에서 열리는 고가음악회를 보러 온 겁니다. 예천 여행 잘 하고 가는지라 실..

겨울바다 간대놓고 이틀 내내 먹다만 왔네

우리나라(북한 빼고) 최북단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입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 남과 북의 휴전선이 일직선이아니라 양구, 인제를 지나 고성에 와서는 반원을 그리며 북쪽으로 치솟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치솟아 올라간 위쪽에 대진해수욕장이 있고 이곳에서 10km 남짓 더 올라가면 휴전선입니다. 여긴 제트스키 반입이 금지된 곳입니다. 시속 80km로 당기면 바다로 월북하는 데 10분도 안 걸리거든요. 그 만큼 휴전선이 가까운 곳입니다. 이곳에 놀러가자고 하니까 아이들 관심은 첨엔 온통 '이북'이었습니다. "북한이 보여?" "사람도 나와?"하지만 탐욕스런(?) 어른들로 인해 주말 이틀을 식탐으로 채우다 돌아왔습니다. 토요일 점심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다섯 끼의 메뉴는 아래와 같았습니다. 물론 반주는 필수..

생각하며 걷는 두 시간, 비수구미 가는 길

비수구미마을을 다녀왔습니다. "뭐라고? 어딜 다녀왔다고?"화천 비수구미마을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파로호나 평화의 댐을 얘기하면 '아, 거기 근처야!'하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 산골 오지 마을을 제가 활동하는 한국문화답사회 회원들 100여 명과 함께 다녀왔습니다.마을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 피난 왔다가 정착한 화전민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그 이전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비수구미마을이 그만큼 오지였다는 뜻이지만 그래도 어지러운 세상과 연을 끊고 이곳에서 조용히 살다 간 사람들은 아마도 있었을 겁니다. 이름의 유래가 되는 非所古未禁山東標(비소고미금산동표)는 왕궁 건축에 필요한 나무를 베지 말라는 금표라고 하는데… 도무지 한자 해석이 안 됩니다.해산터널 앞에서..

막창의 추억 20년 뒤 - 생활사의 고장, 참외의 고장, 성주를 찾다.

성주(星州)는 생활사(生·活·死)의 고장이라고 합니다. 군 홈페이지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왕가의 태를 묻은 곳이니 生의 터입니다. 한개마을의 전통이 이어지는 活의 고장입니다. 성산고분군으로 대표되는 死의 안식처입니다. 그러니까 나서 살고 죽을 때까지 성주에만 있으면 다 됩니다.그런데 이런 캐치프레이즈는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충효의 고장'만큼이나 허망한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 말고 좀더 피부에 와닿는 성주의 이름표는 '참외의 고장'입니다. 고속도로 성주 나들목을 들어서면서부터 참외 캐릭터가 제일 먼저 보입니다. 성주 참외가 유명하다지만 우리나라 참외 생산량의 70%에 육박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깜딱!' 놀랐습니다. 성주에서 참외 파업하면 그해 여름엔 참외 먹기 글른 겁니다. '큰 거 하나에 만 ..

무령왕릉도 안 갔으믄 공주서 뭘 봤디야?

공주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공주대로부터 박물관 전시기획 특강 요청이 왔습니다.당연히 가야지요! 마침 날짜도 토요일이니 겸사겸사 식솔들 대동하고 1박 2일 놀러 갔다 오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그런데 제가 '공주'를 워낙 모릅니다. 아내 외에는 모든 여자에 관심이 없거든요.공주와 연관 있는 지인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공주 출신 직장 동료, 박물관 짓는다고 공주에 체류 중인 후배 등등그들의 한결 같은 답변은 '공주엔 놀 게 별로 없는데…''할 수 없다. 무령왕릉하고 공산성이나 다녀 와야지!'우리가 출발한 날은 월요일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주말 황금연휴의 첫날. 서울 톨케이트 2km 전 지점을 지날 무렵이 아침 7시였는데 공주대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40분. '멘'은 이미 '붕'했지만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침..

이름도 예뻐라! 닭실마을 금당실마을

깊어가는 가을녘에 예천, 안동, 봉화를 가볍게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모두 안동 유교문화권이라고 하여 말씨와 풍습 등 역사지리적인 전통을 공유하는 지역입니다.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이 내후년에 새로 옮겨올 곳도 안동과 예천에 걸친 자리여서 이들 지역은 앞으로 더더욱 긴밀해질 예정(?)입니다.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녔지만 애들 없이 둘이만 떠나는 여행은 처음입니다. 최소한 첫애가 태어난 2002년 이후에는 그렇습니다. 살짝 겁도 납니다. '각자 묵언수행하다 오는 건 아니겠지?'청량산 단풍이 아직 덜 들었습니다. 한 열흘 후면 절정일 거라고 합니다. 단풍하면 내장산, 설악산만 떠올리는데 청량산도 이들에 못지않은 단풍 명소입니다. 퇴계 선생이 백구(白鷗)에게 입단속을 시켰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데(淸凉山歌)..

먹을 것 사오는 사람만 방문을 허락합니다-대관령 양떼 일동

가을이 시작될 때, 대관령 양떼목장을 다녀왔습니다.얘가 대관령 양입니다. 양과 함께 셀카를…난 양띠니까 양 두 마리이곳은 자칭 '한국의 알프스'입니다. 험하지 않은 구릉지에 양떼가 풀을 뜯고 있으니 그렇게도 보입니다.한국의 알프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여기 말고도 몇 군데가 더 있습니다. 먼저 국립공원 소백산도 '한국의 알프스'라 불립니다. 철쭉으로 유명한 비로봉 정상에는 넓은 초지가 펼쳐져 있고 산 여기저기 야생화가 지천입니다. 알프스도 마찬가지로 허브로 유명하잖아요. 또 의외로 칠갑산이 한국의 알프스라 불립니다. 설경이 아름다워서 그런가보다 싶긴 한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혹시 알프스에도 콩밭 매는 아낙네가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알프스가 '스위스의 칠갑산'이지! (허걱! 콩밭 매는 아낙네는..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다 같이 돌자 정동 한 바퀴'라는 예쁜 이름의 꼬마 투어가 있습니다.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주말에만 진행하는 반나절짜리 서울 문화기행인데요, 이 단체의 설립 취지에 딱맞는 탐방 프로그램입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훼손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지정 전) 문화재를 법인의 이름으로 사들여 보전・관리하는 민간단체인데 취지에 공감하여 저도 2년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활동 수준은 이런 행사만 참석하는 정도입니다. 이 곳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홈페이지 알림으로 갈음하겠습니다.저도 정동 한 바퀴 돌겠다고 지난 11월 3일에 초등4 딸과 중1 조카를 데리고 참석했습니다.투어는 성공회 서울성당에 모여서 시작합니다. 성당을 나와 조선일보사를 지나 덕수초등학교를 끼고 돌면 오른편이 선원전 터, 왼편이 구세군회관입니다..

영월은 하늘에 별 땅에도 별

서울서 2시간 남짓이면 영월(寧越)에 도착합니다. 그 옛날 단종이 '감히 딴 마음을 품지 못할 정도로 멀고 먼' 유배를 온 오지가 이곳 영월입니다. 요즘 같은 화력과 기동력만 있었으면 바로 역(逆)계유정난이 일어나 수양대군파가 절단 나고 단종이 도로 왕이 됐을 거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해보지만, 요는 영월이 그만큼 가깝다는 얘깁니다. 시간으로만 따져 '범수도권'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그런데 영월 출신 지인의 얘기를 빌리자면 영월은 아직도 손색없는(?) 오지라고 합니다. 별도의 연출 없이 카메라만 들이대면 70년대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곳이 영월의 대부분이랍니다. 오지답게 밤이 되면 온 천지가 어두워지는데 유독 영월읍엔 불이 반짝거립니다. 군청 소재지 주변인지라 으레 그렇겠지요. 별마로천문대..

한여름 고창은 꽃보담은 뻘이지라

고창(高敞)하면 뭐가 먼저 떠오르나요?풍천장어에 복분자 한잔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눈물처럼 후두둑 동백꽃 지는 송창식의 선운사를 떠올리기도 하며, 청보리와 메밀꽃 피는 학원농장에서 순백의 웰컴투동막골이 눈앞에 재현되기도 할 겁니다. 여름이라면 달고 시원한 고창수박이 생각날 것이고, 역사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동학농민전쟁의 발단이 된 고부민란이나 세계최대의 고인돌 군락지를 떠올리고, 문화예술을 생각한다면 신재효의 판소리 여섯 마당이나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읊조릴 겁니다. 또 후삼국 시기 안동의 옛지명이 고창이었다는 엉뚱한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처럼 고창엔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것들이 많고 많은데 우리는 비교적 덜(?) 유명한 만돌리 갯벌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잘 몰라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