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공주대로부터 박물관 전시기획 특강 요청이 왔습니다.
당연히 가야지요! 마침 날짜도 토요일이니 겸사겸사 식솔들 대동하고 1박 2일 놀러 갔다 오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공주'를 워낙 모릅니다. 아내 외에는 모든 여자에 관심이 없거든요.
공주와 연관 있는 지인들을 수소문했습니다. 공주 출신 직장 동료, 박물관 짓는다고 공주에 체류 중인 후배 등등
그들의 한결 같은 답변은 '공주엔 놀 게 별로 없는데…'
'할 수 없다. 무령왕릉하고 공산성이나 다녀 와야지!'
우리가 출발한 날은 월요일 석가탄신일로 이어지는 주말 황금연휴의 첫날. 서울 톨케이트 2km 전 지점을 지날 무렵이 아침 7시였는데 공주대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40분. '멘'은 이미 '붕'했지만 억지 미소를 지어가며 침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왜냐? 강의까지 '붕'하면 안 되니까!
특강을 마치고 공주대 구내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딸아이가 아마도 엄마의 심기를 건드렸나 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신났다고 웃고 있는데 뒤에 선 엄마는 딱 그 반대의 표정입니다. 아내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표정은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표정 참 볼 만했는데'
자, 이제부터 공주를 다녀볼까! 공주가 어떤 곳이냐? 백제의 2번째 도읍으로서 당시 이름은 웅진(곰나루). 대표적인 유적으로 무령왕릉이 떠오르고, 역사의 현장으로는 동학농민군 최후의 전적지 우금치 고개, 고찰로는 남매탑(오뉘탑) 전설의 동학사와 갑사 그리고 마곡사, 많이 알려진 인물로는 TV 드라마를 통해 '민나도로보데쓰'를 유행시킨 공주 갑부 김갑순, 다리가 굵고 공놀이가 특기이고 공주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박세리와 박찬호, 작년만 같았어도 많은 설명이 곁들여졌을 웅진그룹의 윤석금 회장, 이들보다 훨씬 옛적 고려시대에 신분 해방을 꿈꾼 망이 망소이 형제, 공주의 대표적인 음식은… 모르겠고 특산물은 알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그 시절 공주사대의 명성까지…… 이상, 공주 겉핥기였습니다.
공주는 충남의 대표적인 고장이었습니다. 대전역이 들어서고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백여 년 전 경부선을 놓을 때 중간역은 본래 공주에 계획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보수적인 공주의 양반들이 이 흉물스런 철마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철마는 대전(한밭)으로 갔다고 합니다. 어째 곧이곧대로 믿기는 좀 거시기합니만 공주에 왔으니 그냥 믿겠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을 먼저 갔습니다. 이곳의 주 전시물은 무령왕릉 출토 유물입니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입니다. 무덤의 비망록이랄 수 있는 지석이 함께 나왔기 때문입니다. 도굴을 안 당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구누구왕릉'은 유력한 추정일 뿐입니다. 경주에 가면 수많은 왕릉이 있지만 자세히 보면 '전(傳) 진흥왕릉', '전 신문왕릉'처럼 표기돼 있습니다. 진흥왕의 무덤이라고 전해오지만 완전히 확실한 건 아니다, 뭐 이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만약 무령왕릉마저 온전히 발굴하지 못했다면 안 그래도 사료가 부족한 백제역사는 더더욱 미궁이었을 겁니다. 이처럼 귀중한 유물을 애들은 모릅니다. 아니, 애들이니까 모릅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기와 문양 찍어보고 도기 파편 맞춰보는 체험학습실이 최고입니다. "무령왕릉은 나중에 배웁시다 쫌!"
이참에 국립공주박물관하고 무령왕릉 얘기 좀 상세히 할까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의 본관 외에 지방 11곳에 분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중 셋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설치된 곳입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이 셋 중 하나입니다. 시쳇말로 다같은 중박(중앙박물관)이 아니라는 겁니다. 네 번째 분관이 1978년에야 광주에 설치된 걸 생각하면 공주박물관 정도 연륜에 충분히 '짬밥' 자랑할 만합니다. 나머지 둘은 경주와 부여이고 1945년, 같은 해에 개성박물관도 생겨났지만 아시다시피 지금은 '당과 인민'이 관할하고 있습니다. 공주박물관은 웅진시대 백제 유물을 전문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박의 지방 분관이 모두 그렀습니다. 경주박물관은 신라 유물,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유물, 광주박물관은 신안해저 유물, 김해박물관은 가야 유물이 주요 전시물이거나 설립의 주목적이었습니다.
학계에서는 무령왕릉의 발견을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세기의 발굴이라고 평가합니다. 어떤 천운이 닿았기에 일제강점기의 악랄한 문화재 도굴로부터 몸을 숨겨 1971년에야 처녀분으로 발견될 수 있었을까? 한편으론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쉬워했던 것처럼 1500년을 두고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조금만 더 참고계시다 나올 것이지 어쩌자고 하필이면 척박한 그 시절을 택해 세상에 나왔을까?
'척박한 그 시절'은 대체 어땠을까요? 유홍준의 책을 보면, 1971년 7월 7일부터 이틀간 당시 공주 송산리에서 펼쳐졌을 그림이 그려집니다. 장마가 시작돼 비는 퍼붓습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발굴에 대한 긴장으로 나는 이미 내가 아닙니다, 곁에서는 '각하'께 얼른 보여드려야 한다고 닥달하는 양반들 계십니다, 발굴장을 둘러싼 사진기자들은 이제 파파라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김원용 당시 발굴단장(국립박물관장)은 정년퇴직하는 그날까지도 자신이 역사의 죄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그의 제자 유홍준 교수도 역사상 최고의 발굴이자 동시에 최악의 발굴이라고 평했습니다. 스승의 학설과 반대되는 연구 결과를 얻었어도 스승의 사후에나 논문을 발표한다는 보수적인 사학계에서, 스승 김원용의 발굴을 이렇게 평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아쉬움이 크다는 얘기겠지요. 3000점 가까운 유물을 이틀 만에 발굴 완료했으니 유물 수습이 아니라 보자기에 쓸어담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무령왕릉이 요즘 발견됐다면 과연 이런 실수는 없었을까요? 시절이 척박하기로는 지금도 만만치 않기에 드는 생각입니다.
무령왕릉을 지척에 두고 결국 못 갔습니다. 큰애는 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때 이미 다녀왔다나요? 인근의 곰나루관광지에서 그냥 편안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곰나루관광지는 문화센터, 공연장, 체육시설을 갖춘 시민공원입니다. 대낮부터 텐트 쳐놓고 삼겹살 구워먹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곰과 나무꾼의 전설이 전해오는데 얘기는 좀 밋밋합니다. 자식까지 낳고 함께 살던 암곰을 버리고 나무꾼이 나루를 건너 도망가자 슬픔에 빠진 곰이 그만 강물에 몸을 던졌고 그후로 그곳을 곰나루라 불렀다고 합니다. 여우랑은 살아도 곰이랑은 못 산다는 얘기가 맞나 봅니다. 후손들은 나무꾼을 이해합니다. 어쨌거나 그래서 공주의 옛 이름이 웅진(熊津) 즉 곰나루입니다. 고마나루라고도 합니다. 웅진이 웅주가 되고 곰주가 되고 공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주에 뭔 맛집? 하는 편견을 깨주는 집입니다. 발끈하시는 분들이 눈에 보입니다. 물론 이학식당의 따로국밥 등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곳도 있지만 선수층(?)이 얇은 건 사실이잖아요? 처음엔 기대도 안 했기에 몇 젓가락 맛 보다가 주섬주섬 카메라 꺼냈습니다. 막국수의 메카랄 수 있는 경강로변에서 제일 맛있는 집과도 견줄 만합니다. 물막국수, 비빔막국수 둘 다 맛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녹두빈대떡이 가장 맛있었습니다. 김치도 맛있고… 기본적으로 음식 솜씨가 있습니다.
계산할 때 쥔장에게 조리법을 살짝 물어봤지요. 흔쾌히 가르쳐 주던데 들으나마나한 정보입니다. 식용유를 쓰지 않고 돼지기름으로 부쳤답니다. '누가 그런 거 물어봤나?'
왕만두는 평범했습니다. 공주시내에서 계룡산쪽으로 가다가 충남과학고 나오기 직전 맞은편에 있습니다. 식당 이름은 춘산메밀꽃. 혹시라도 녹두빈대떡 조리법을 알려주시거든 여기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
금강둔치로 내려가니 강 건너편 공산성의 야경이 볼 만합니다. 아! 이제 공산성 설명해야 하나? ㅠㅠ 공주에서는 너무 역사 한 과목에만 치중한 것 같으니, 공산성이 백제의 도성이었다는 정도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금강둔치에서는 주민등록증만 맡기면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줍니다.
"공주사람 아닌데도 돼요?"
"돼유!"
공주 만세! 아니, 공주님 만세!!!
1박 했냐고요?
공주한옥마을서 자고 싶었는디 왜 있자녀 나비 그려진 핸드폰 회사, 갸네들이 싹 다 빌려버린 통에 어제까정 전화통만 붙들구 실상은 예약도 무대써!
다른 데 가서 자고 갈까? 물었더니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웬일이데? 애들이 노는 걸 마다하구!'
유서깊은 도시는 머리가 아픈가 봅니다! 테마기행이 아니라 역사탐방을 다녀왔습니다.
2012. 0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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