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산너머살구'

미완의 왕도 익산에서 미완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kocopy 2025. 4. 7. 13:27

변덕스런 날씨가 이어지는 중에 하루 골라낸 것처럼 화사한 날, 익산을 다녀왔습니다.

산너머살구에서는 좀체로 가지 않는 축제장까지 쫓아가며 기어이 유채꽃을 보고 온 이유는?

이 근방에 있어야 할 유채꽃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ㅠㅠ

보석 구경 좀 하고 바로 봄꽃 감상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유채밭이 공사 현장으로 바뀐 작태(?)에 인솔자는 잠시 멘붕

결과적으로 오늘 일정 중 이곳저곳에서 봄꽃 구경은 많이 했지만, '못 먹은 남의 떡'에 대한 몇몇 민원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유채꽃 축제장 찾아가기'라는 큰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이게 뭐라고, 줄을 한참 서가며 허위허위 찾아왔는지… ^^

그래도 이렇게나 좋아해주시네요.

확실한 건 유채는 실물보다 사진이 더 예쁘다는 거 ㅎㅎ

'아무튼 예쁘다! 사람도 꽃도'

꽃구경 전에, 오늘 일정의 하이라이트 '안닮은 쌍둥이' 미륵사탑을 구경했습니다.
장장 18년의 복원 기간을 거쳐 일반에 개방된 지 1달도 채 안됐습니다.
각각 미륵사지서탑, 동탑이라 불리는 이들이 1,400년 만에 이란성(?)쌍둥이로 만나게 된 사연은 자료실의 읽기자료를 참고하세요. ^^

미륵사지 길 건너편은 계속해서 뭔가를 파고 있었습니다. 뭐가 발견돼서 이 일대가 어떻게 변할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같은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도 답사의 묘미입니다.

하이라이트가 어쩌구 하는 건 순전히 인솔자 생각이고, 회원들이 가장 좋아라 했던 곳은 고스락이었습니다.

장독 사진은 아무래도 흑백이 더 운치가 있지요?

2019년 봄날의 익산 여행이 훗날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면 아마도 이곳 고스락을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원들의 표정을 봐서는 그렇습니다. ^^

 

처음 운행해보는 31인승 초장축 리무진으로 함께 봄나들이 다녀온 26명의 선남선녀들(?), 이 분들께 정말로 고맙다는 진심을 전합니다. 지난 8년, 39회 동안 어느 한번 고맙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특히 이번 익산행은 제겐 감회가 조금 다릅니다.

이미 버스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길다면 길었던 산너머살구의 여행을 이제 좀 쉬려고 합니다. 쉰다고는 했지만 마무리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닐 듯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자칫 푸념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긴 여행을 마무리하는 제 소회를 말씀드리는 것이 그간 함께 해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약 반년을 준비한 끝에 2013년 1월 1일 '산너머살구'를 그랜드오픈(?)하고 3월 16~17일 15분의 원년 멤버들과 1박2일 여수 일정으로 여행 카페의 첫단추를 끼웠습니다.

그후 8년간, 신청 인원이 너무 적어 버스 임대를 취소하고 직접 밴을 운행한 적이 2번 있었지만 약속된 일정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때 아닌 4월 한파 폭풍우에 여행 아닌 고생길을 다녀온 적도 있었고 산림욕을 갔다가 산에서 길을 잃어 고난의 행군을 한 적도 있었고 버스에서 잠을 자는 무박2일 여행 중에 버스 히터가 고장나 '어 추워~'를 연발하는 원망어린 잠꼬대를 들어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욕을 얻어먹을 만큼의 불미스런 일은 없었습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는 걱정어린 충고를 들을 때면 저는 늘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산너머살구가 콘텐츠 생산소다!'

저는 일류 요리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원가를 따지지 않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여 상을 차려내면 회원들은 맛있게 드시며 즐거워하실 거고 저는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요리 실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단히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꼭 돈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던 셈이지요. 대신 '물은 셀프'라는 모토로, 알찬 계획 외에 아침에 떡을 준비한다든지 하는 부수적인 여행 서비스는 비교적 무심했다고 자평합니다.

처음 문을 열 때부터 저에게는 확실한 롤모델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여행이야기-링크'에도 걸려있는 여행 카페 '모놀과 정수'입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1만6천여 회원을 두고 여행공지와 동시에 10분도 안 되어 45명 정원을 마감시켜 버리는 신기의 내공이 마냥 부러웠습니다.

'나라고 해서 못할 건 없다.'

자료 한번 더 뒤지고 답사 한번 더 하고 이익을 남기지 않는 가격 정책은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되는가 싶었습니다. 대략 3년 전부터는 웬만하면 만석은 채웠고 어떤 때는 오전 반나절 만에 마감되어 대기자가 줄을 서는 영광도 누려봤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더군요. 대체로 정원은 채우는 중에도 간혹가다 한번씩은 최소 인원조차 못 채우기도 하고.

그럴 때면 몇몇 분들로부터 톡이나 메시지가 옵니다.

'미안해요!'

좋은 기회를 놓쳐서 아까운 게 아니고 못 가줘서 미안한 거구나! 보험이나 농산물처럼 지인의 물건을 팔아줘야 한다는 부담이 여전히 있는 거구나!

올 3월, 38회 홍성 여행 때 7명과 함께 밴을 몰고 다녀오면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안되는 거였다고 말 할 때가 된 것 같다.'

설득이나 설명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회원들의 정서를 바꿀 게 아니라 내가 방법을 바꾸자. 여행 전문가로 향해가는 콘텐츠 축적이 꼭 단체여행의 형식일 필요는 없다. 방법을 두고 더 속을 끓인다면 이건 집착이 된다. 비록 재미는 덜 하겠지만 답사는 그냥 나 혼자 다니자.

모늘과정수는 초창기 카페(다음, 네이버 등)의 혜택을 입은 곳이라 어떤 방법을 써도 내가 따라 갈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ㅎㅎ

반복해서 되뇌게 되는 이 말이 결론인 듯합니다.

"안 되는 거였다고 말핼 때가 된 것 같다."

8년이 돼도 지인 마케팅에 울고 웃는다면 이건 안 되는 게 맞다.

운행중지가 아니라 우선멈춤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이유가 있는 중단이기에 그 이유가 해소된다면 다시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거라 판단됩니다.

우선은 좀 쉬고 싶고 12월경에 늘 진행하던 서울 답사는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이라도 와주신 분들의 이름을 쭉 불러보고 싶지만 세어보니 229명이라 마음으로만 인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산너머살구 카페지기 회화나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