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마감을 해봤습니다.
그 고마운 분들을 소개합니다. ^^
여기는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입니다.
이번 참가자들의 특징이라면 '딸과 함께'였습니다.
중2, 고2, 대1, 다양한 연령의 딸들과 동반해주셨습니다.
제가 '딸 데리고 오라'고 한 적이 없는데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건 교육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대한제국기(속칭 구한말)를 전후한 시기 가장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을 자녀와 함께 하고픈 장한 부모들이십니다.
아, 물론 딸보다 사랑스런 아내만 동반한 분도 계셨습니다. ^^
덕수궁에서 시작되는 '정동길'은 '근대문화1번지'라 이름 붙은 역사 탐방로입니다.
이런 연표와 지도를 더듬어 가며 천천히 걷기에 아주 좋은 길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걸었습니다.
하지만 여행 후기는 좀 색다르게 써볼까해요.
일단 노래 한 곡 감상하시고…
이 노래! 이문세의 '광화문연가' 가사를 따라 기억을 더듬어보겠습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낭만의 덕수궁돌담길.
사실은 아픈 역사의 흔적입니다.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경운궁이 전임 황제 고종의 생활공간인 '덕수궁'이 되었다가 고종마저 돌아가신 뒤로는 이놈저놈이 야금야금 잘라가기 시작합니다.
선원전이 있던 자리까지 길이 뚫리면서 그 자리로 경기여고(당시 경성제일여고)가 옮겨오고 길에는 담을 쌓아 소위 ‘덕수궁 돌담길’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대략 40세 이상인 분들은 이런 속설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믿거나말거나에는 항상 그럴 듯한 '썰'이 따라다닙니다.
전해 오는 얘기 중 '말 되네!' 싶은 전설을 간직한 곳은 돌담길과 마주 보고 서 있는 시립미술관입니다.
이곳의 문화재 명칭은 '옛 대법원청사'입니다. 1895년 최초의 근대식 재판소 평리원(平理院)이 들어선 이후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만으로 일백년간 재판만 해온 장소입니다. '오늘 도장 찍자!'며 씩씩거리는 부부가 갈라서기 위해 가정법원을 가려면 대개 이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는 헤어집니다. 돌담길을 걸어 헤어진 게 아니라 헤어지기 위해 돌담길을 걸은 거니까 전설의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셈입니다.
이 '썰'이 맞는다면, 법원은 이제 강남 가고 없으니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데이트족들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눈은 다 녹았지만 바로 이 정동제일교회가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입니다.
우리나라에 세워진 최초(1897년)의 개신교 교회로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했던 곳이며 사적 제256호입니다.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어? 우리도 광화문네거리 조금 위쪽,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차 한잔씩 했는데 사진을 안 남겼네요.
아무튼 광화문네거리에 다시 찾아왔어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언덕 밑 정동길'에 밑줄 쫙!
정동길이 왜 언덕 밑에 있을까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산을 제외하면 주변 터가 궁궐보다 높을 수는 없습니다.
일제가 경성재판소(1928; 현 서울시립미술관)를 만들며 21척의 흙을 쌓아 일부러 덕수궁보다 높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립미술관을 가려면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야 합니다.
재판소의 권위를 높이고 동시에 망한 나라의 옛궁궐을 아래로 내려다보려는 의도였다네요.
'광화문연가'에는 안 나오는 곳, 석조전-대한제국역사관입니다.
황궁의 전각으로 짓기 시작했다가 정작 완공(1910)된 이후에는, 영친왕의 임시숙소, 이왕가미술관, 해방 후에는 민주의원의사당, 미소공동위원회 및 UN한국임시위원회 회의장, 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문화재관리국 사무실, 궁중유물전시관, 덕수궁사무소 등등 다양한 용도 변천을 겪다다 이제 대한제국역사관이 되었습니다.
우리 현대사만큼이나 기구한 '뒤웅박 팔자'입니다.
개관한 지 두 달밖에 안됐습니다. 덕수궁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하고 꼭 한번씩들 다녀오세요.
회당 15인까지만 예약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 중명전, 구러시아공사관, 배재학당 동관 등을 다니다, 역사와 전통의 정원순두부에서 뜨끈한 순두부도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만 2년, 횟수로 18회 만에 처음으로 마감을 해봤고, 처음으로 반주 없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꾼들이 안 오셔서 그래요.
"꾼들! 내년에 봬요."
2014년, 산너머살구와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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