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 이름을 새기면 다시 오게 된다기에 소망을 담아 적었다. 고비가 한국어를 모를 수도 있으니 몽골어로 한 번 더 적었다.
사막을 벗어나면 초원이 나오기 전까지 황무지다. 사막, 황무지, 초지가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이어진다.
이런 곳에도 풀이 자랄까 싶은 곳에 회양목을 닮은 관목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저것은 몽골의 선인장인가? 저렇게 여리게 생긴 식물이 어떻게 이 척박한 곳에서……
짠한 마음으로 그 옆을 지나다 가지 하나가 살짝 닿았을 뿐인데 종아리에 대번 생채기가 났다. ‘만만히 볼 종자가 아니구나!’
고비에는 ‘고빈 함홀’인가 하는 식물의 군락이 흔하다던데 여린 외모(?)와는 달리 속은 거칠고 딱딱하다더니 바로 요 녀석인 것 같았다.
유난히 깊고 강한 뿌리로 모래를 움켜쥐고 있는 탓에 주변의 흙과 모래가 다 날려가도 이들이 품은 곳은 언터처블이다. 그렇게 만든 풍광은 왠지 퇴락한 공동묘지를 떠올리게 한다.
홍그린엘스 여행자캠프(고비디스커버리2캠프)에서 어제까지 4박을 했다. 숙소의 시설이며 물건들이 내집처럼(?) 편안하고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포토포인트도 생겨났다.
특히나 유리도 없는 문틀은 마치 그림에 두른 액자처럼 아무나 찍어도 명화를 만들어준다.
정든 숙소를 떠나, 오늘은 진정한 풍찬노숙이라고 한다. 아르츠보그딘 산 중턱의 평원에서 야영을 하는 것이다.
야영!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 설레는 말이다.
텐트를 쳐야 하지만, 평탄화 작업 같은 건 전혀 필요가 없다. 더 좋은 터를 차지하겠다고 눈치 보면서 찜할 필요도 없다. 산 중턱인데도 그냥 사방이 다 평지다.
텐트 치고 밥 해먹으니 어느새 해는 지고 하늘엔 3분의 1쯤이 별이다. 그믐 무렵이었으면 발 디딜 틈이 없어 하늘 밖으로 밀려난 별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을 거라고 한다.
고비에서는 상당히 귀하다는 모닥불이 준비됐다. 이번 모임엔 시인이나 소설가가 많다. 시인이 자신의 시를 직접 낭송하고 그 앞으론 모닥불이 타닥거리고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게다가 앉은 자리에선 허브향이 코를 자극한다면… 나 오늘 보드카와 함께 죽어도 여한 없으리!
그래서 죽어줬다. 몽골 온 지 아흐레 만에 처음 만취상태로 오늘의 생을 마감했다.
아침에 부활하여 어제의 자취를 카메라 모니터로 확인하다 신비스런 사진을 발견했다.
머리에 화관을 해 얹고 모닥불 가를 돌며 맨발로 춤을 추는 사람들. 이 장면이라야 그날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지만, 이 사진을 손보지 않고 올렸다간 아무래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이것은 차라리 계륵(鷄肋).
뱉지도 삼키지도 않고, 손을 조금 대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만들었다. 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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