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훈의 테마기행/2016~20년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⑧여드렛날1 – 모래언덕에서 해돋이, 낙타 등에서 해넘이1

kocopy 2025. 3. 2. 07:32

새벽 5시. 어제보다 두 시간이나 먼저 성덕대왕신종의 데에~~~~~~~~~~엥 하는 맥놀이가 고요한 게르 속 평원의 적막을 찢는다. 알람은 언제 들어도 괴롭다! 그것이 몽골의 대평원 품속일지라도.
어젯밤 39.5°의 보드카와 4.5°의 피워(몽골에선 맥주를 이렇게 부르는데 비어랑 거의 비슷하게 들린다.)를 섞어 마시며 내일 아침 홍그린엘스의 일출을 보러 가자고 다짐했던 사람들 거의 전부가 모였다. 초원에서 맹세한 도합 44°의 결의는 이렇게 비장했다.
길은 너무나 단순하다. 달빛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저 모래산을 향해 그냥 걸어가면 된다. 사실 길도 따로 없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다!(ㅍㅎㅎ 이 말 너무 멋져 ^^)
1시간쯤 걷다 보면 옅게 새어나오는 여명이 발아래를 밝히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손전등을 꺼도 좋다. 그리고 2개 겹쳐 입은 바람막이 중 1개를 벗고 목도리도 풀어 배낭에 집어넣어도 좋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바람막이 1개도 마저 벗게 될 것이다.
동편에서 해가 떠오르면 얕은 연봉들 사이사이 골짜기마다엔 산그림자가 생긴다. 그보다 촘촘한 고랑엔 얼룩말 몸통 같은 물결무늬가 출렁인다.

모래의 색깔 때문일까? 빛이 그리는 모래언덕은 인체를 닮았다.
움푹 팬 배꼽도 있고 봉긋 솟은 젖가슴도 있다. 꼭대기엔 젖꼭지도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했으면 음란이 되겠지만, 동행한 소설가 이경자 선생님의 표현이니 문학적 은유로 이해해 달라.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댄다. 그냥 지금이 좋다고.
그리고는 벌렁벌렁 뒤로 눕는다. 나 여기 이대로 있겠노라고.

정말로 이대로 있다가는 밥을 굶게 된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오니 8시 조금 넘은 시간. 아침 먹는 자리에서 이시백 대장이 혹시 모래에 이름을 적고 왔냐고 묻는다. 그러면 몽골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럼 이름을 적어줘야지. 낼 새벽에 다시 가야겠구만!’
모래언덕에 앉아 해돋이를 하고 숙소로 걸어와 아침밥을 먹는다. 안 하던 새벽운동 뒤끝에 식곤증이 겹쳐 게르 옆 그늘에서 한숨 잔다. 자다 깨서 옷 좀 널고 책을 펼쳤는데 점심 집합이다. 먹고 또 잔다. 잠이 깊이 들 리가 없다. 카메라 메고 어슬렁거리는데 식당 앞 테라스에서 일행 몇몇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길 지나는 과객을 자처하니 어여 앉아 한 잔 하란다. “캬~ 이런 경치에선 보리를 갈아서 물에 타 마셔도 맥주다!” 실없는 소리로 고비의 자연을 예찬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또 밥을 먹으란다. 이번엔 몽골국립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알바생이 정장까지 차려입고 귀를 즐겁게 해준다. 팔자에 없는 고비 디너쇼까지 즐겼고, 조금 뒤면 낙타 등 위에 앉아 해넘이를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