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훈의 테마기행/2016~20년

바람의 나라 14일의 비망록 10.아흐렛날1 – 나 홀로 고비를 맞다

kocopy 2025. 3. 2. 07:56

어제 이 시간 홍그린엘스로 향했던 용사들 중 몇몇은 오늘 새벽에 또 가겠다고 결의했다. 새벽 5시, 어김없이 울리는 성덕대왕신종 소리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문밖으로 나와 보니…… 아무도 없다.
어제 노느라 얼마나 피곤했겠나? 모래에 이름을 새기겠다는 간절함이 있는 나 같은 사람만 또 가는 거다.
그렇더라도 동도 트지 않은 새벽에 혼자 가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다. 해 뜨기 전엔 늑대가 돌아다닌다던데…
솔직히 한 마리면 어떻게 해볼 자신이 있었다. 약간 구부린 기마자세를 취하다가 달려오는 녀석의 대갈통이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오른발 후리기로 냅다 턱주가리를…… 캐갱캐갱캐갱~~~
다리 사이로 꼬랑지를 말아 감춘 채 뒤도 안 돌아보고 10키로쯤 줄행랑을 칠 것이다.
문제는 떼로 몰려왔을 때이다. ‘한 놈만 패야 할까? 손전등으로 늑대들의 눈을 일일이 비추면 집단 멘붕이 오겠지? 일단 소리를 질러 숙소에도 알리고 늑대들도 움찔 놀라게 하고…’
작전을 짜다보니 어느새 여명이 밝아온다.
모래언덕에 올라앉았는데 오늘도 태양은 어제 그 자리에서 떠오른다.

해가 비추는 모래 위론 어제의 그 배꼽과 젖가슴이 다시 생겨난다.

오늘은 어제 없던 만리장성까지 생겼다. 하룻밤 만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모래 위로 철로를 깔고 다니는 녀석을 드디어 찾았다. 바퀴보다도 작은 요놈, 잠시도 쉬는 법이 없이 계속 철도부설중이다. 어떤 사명감을 지닌 것이 분명하다.
‘고비의 모래밭 지나갈 제 아무렇게나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누군가의 길이 될지니’

사막에서 이어폰 꽂고 듣는 음악은 평생 못 잊을 감동이었다는 누군가의 기행문을 읽었던 터라 휴대폰에 노래 2곡을 내려받아왔다. 바로 지금 내 시야가 닿는 거리 안에 나 이외의 생명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이어폰이 필요하겠나? 얼마 안 되는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I have often told you stories about the way …
이 노래의 가사 내용과 지금 나를 둘러싼 고비의 풍경 사이엔 거의 유사점이 없다. 낙타가 풀을 뜯는 사막에 풍차 도는 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노래 속 주인공 역시 나의 모습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인생이다. 나는 drifter도 아니요, traveller도 아니요, 은퇴한 soldier of fortune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되먹지 못하게 눈물이 난다.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른다.
눈만 벌겋게 물들이고 정작 뜨거운 것을 흘려 내보내진 못했다.
병신 새끼! 이럴 때 펑펑 울어야지. 십 분만이라도 꺼이꺼이 통곡을 했어야지.
관계와 예의, 그 핑계로 주변을 살펴온 구닥다리를 어쩌자고 여기까지 들고 왔나.
우우웅~ 우우웅~ 사구의 모래가 바람에 날리며 묘한 소리를 낸다.
고비는 내 대신 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