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몽골의 그랜드캐년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런 별칭은 분명 한국인이 붙였을 게다. 유난히 ‘한국의 ○○’를 좋아하는 버릇을 전가의 보도처럼 몽골에 와서도 공유하는 게 아닐까 하는…
물론 근거 없는 내생각일 뿐이다.
예전에 바다였던 땅이 솟아올라 거대한 평원을 이루었다. 몽골의 바람은 평원을 깎아서 날려버릴 만큼 강했지만 바람보다 강한 자끄나무가 뿌리로 흙을 움켜쥔 부분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남았다. 자끄나무는 염분 토양에 적응한 식물이다. 이곳 바얀자끄처럼 수분이 별로 없는 땅에서 굳세게도 수백년을 살기도 한다. 그렇게 자라도 높이는 3m 남짓이라고 하니 그 목질이 얼마나 단단하겠는가? 고목의 경우 도끼나 톱으로는 자끄를 자를 수가 없다고 한다. 강인함에서는 바람서리 불변하는 우리 소나무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 어떤 분이 향나무를 닮은 것 같다고 하는데 내 눈엔 측백을 더 많이 닮은 것 같다.
붉은 절벽 위에 자끄나무만 자라던 이곳이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약 백년 전쯤 미국의 한 고생물학자가 바얀자끄에서 골격이 완벽한 공룡뼈와 공룡알의 화석을 다량으로 발견한 것이다.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라는 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잘 알려진 인디애나 존스이다.
꼼꼼이 둘러보면 공룡알은 지금도 찾을 수 있다. 나도 하나 찾았다. 7천만 년 전 공룡알을 직접 만져봤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행여 집에 가져올 생각조차 하지마라. 정말로 큰코다친다.
바얀자끄를 벗어나 홍그린엘스로 가는 길. 초원과 황무지가 교대 되는 풍경이 2시간째 이어진다. 풀이 더 많으면 초원, 돌과 모래가 더 많으면 황무지. 그냥 내가 정한 분류방식이다.
가다 보면 소떼가 나오고, 조금 더 가면 양과 염소떼가 나온다. 말떼도 나온다.
낙타떼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는 걸 보니 사막이 가까워지나 보다.
초원 한 가운데 짚으로 만든 듯한 짐승이 누워있어 다가가 보니 속을 모두 파 먹힌 자연 박제 염소였다. 사람이 죽어 염을 할 때 배고프지 말라고 입에 쌀을 넣어주기도 하는데, 파릇파릇한 풀밭에 누운 저 염소는 저승길에 먹을 걱정은 없겠다.
점심은 초원에 앉아 들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은 사람들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춤을 춘다. 춤이라기보다는 초원에 방목된 양떼의 종종걸음 같기도 하고, 좋게 봐주면 빙글빙글 도는 사위가 얼핏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양팔과 고개를 하늘로 뻗어 신내림을 받는 듯한 저 자세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환희를 패러디한 걸까? 쇼생크 탈출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솔롱고스 탈출’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를 가두던 솔롱고스여! 더도 말고 2주만 나를 잊어다오!
몽골에서는 한국을 코리아가 아닌 솔롱고스(Солонгос)라고 부른다.
저녁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게르의 남쪽으로 허연 모래산맥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홍그린엘스다.
‘내일 저길 오른다고 했지? 그렇게 높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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