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들기 전, 오늘 일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심심해 죽어봐라!” 어려운 말로는 망중한.
하루 종일 밥만 먹고 놀다가 저녁까지 일찍 챙겨먹고 모래언덕을 오른다고 했다.
지난 일정이 빡셀수록 휴식은 더더욱 꿀맛이다. 게르를 같이 쓰는 룸메이트는 아침을 먹자마자부터 텐트를 친다 플라잉을 친다 부산을 떨더니 결국 제대로 된 작품 하나를 만들었다. 고비 초원에 그늘을 만들어 눕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쾌함인지는… 정말,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 것도 안 하는 편안함.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도 더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던 누구처럼, 정말 아무 것도 안 할수록 좋다. 이대로 좋다.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문득 두렵다.
그래서 까르페디엠이라지 않던가? 오늘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은 2017년 8월 9일, 몽골 시간으로 오후 4시 39분.
자 이제, 다시 시간은 잊자!
홍그린엘스는 마치 산맥처럼 이어진 모래언덕, 즉 사구이다. 엘스(Элс)는 몽골어로 모래.
사구의 길이는 200km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구 너머엔 알타이산맥의 지맥이 병풍처럼 버티고 있고 그곳을 넘어 남으로 남으로 한참을 가면 모래가 지평선을 이루는, 사진 속에서 본 익숙한 ‘고비사막’이 나온다. 그곳은 내몽골이다.
“이번에 몽골 간다며? 어디로 가?”
“고비사막”
지인들의 물음에 마치 2주 동안 사막을 순례할 것처럼 답했지만 진짜 사막에는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고비(говь)는 몽골의 남부지역을 일컫는 지명이다. 단어의 뜻은 사막이지만 고비에서 온통 모래로만 덮인 순수(?) 사막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돌과 모래가 섞인 초원과 황무지가 이어지며 간혹 숲과 온천도 나온다. 초원이 있어야 낙타들도 뭔가를 뜯을 게 아닌가?
홍그린엘스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첨엔 두 발로 시작하지만 중턱부터는 대부분 네발짐승의 자세가 되는데 모래능선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다보면 다리 힘이 쪽쪽 빠지면서 숨은 턱까지 차오른다.
내가 만약 사막에 홀로 내던져진다면 한나절 만에 죽을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그렇다 해도, 천지를 태워버릴 듯 불붙은 홍그린엘스의 노을은 둘이 보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것이다. 이것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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