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에는 돌을 전시한 박물관이 있다.
포천하면 막걸리, 이동갈비, 산정호수만 생각했지 이곳이 돌의 고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포천은 우리나라 3대 화강암 산지 중 한 곳이며, 내륙에 하나뿐인 화산강을 품은 현무암의 고장이기도 하다. 현무암이야 한탄강 줄기를 따라 일부 구간에 있는 것이므로 자원의 개념으로까지 보기는 힘들겠지만 화강암은 명실상부 포천을 대표하는 전국구 자원이다. 포천의 포천석은 경남 거창의 거창석, 전북 익산의 황등석과 함께 3대 화강암으로 꼽힌다.
3대 화강암 중 서울에서 가까운 포천석은 지난 수십 년간 서울 수도권 화강암 수요의 80%를 감당해왔고 청와대, 국회의사당, 인천공항은 물론 불에 탄 숭례문 복원에도 쓰일 만큼 품질도 우수하다. 울릉도에 세운 ‘독도는 우리땅’ 노래비도 포천석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화강암이 얼마나 쓰임이 많은가? 집을 지을 때도, 성벽을 쌓을 때도, 묘를 만들 때도, 탑이나 기념물을 조성할 때도, 공공시설의 계단이나 바닥을 설치할 때도 모두 굳건한 화강석을 사용한다. 우리가 매일 오르내리는 수도권 지하철 계단의 상당수가 포천석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포천석이 계속 공급되다보니, 좀 과장해서 이제 포천에 더 이상 화강암이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던 포천의 화강암은, 그러나 봄이면 새싹을 내미는 과실수가 아니었다. 제살 떼어주듯 아낌없이 내주던 돌들이 바닥을 드러내고 나면 채석장은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채석장이 문을 닫으면 산은 어찌 될까? 돌을 캐내기 전의 옛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캐다 남은 돌 절벽, 방치된 돌덩어리, 곳곳에 널브러진 채석장비…
뿌연 돌가루 날리며 운영 중일 때에도 문제지만 그나마 그 역할도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출입을 꺼리는 쓰레기 천지에 우범지역이 되고 만다.
천주산 자락, 신북면 기지리 폐채석장은 화강암의 고장 포천이 지닌 숙명과도 같은 골칫거리였다. 폐채석장은 평생을 알만 낳다 폐계가 되어버린 늙은 암탉처럼 가련했다.
폐계와 폐채석장!
생산을 멈춘 자여! 그대의 운명은?
마당을 나온 암탉! …처럼 채석장은 새 삶을 얻었다. 암탉의 이름은 잎싹이고 채석장의 이름은 포천아트밸리다.
포천아트밸리는 ‘지역 혐오시설이 관광 매력물로’ 탈바꿈한,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성공사례이다. 성공사례 하나를 더하자면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동굴 정도랄까?
폐채석장 자리는 돌이 잘려나간 흉터가 아물면서 천연 스크린이자 최고의 음향시설이 되었고 그 아래 깊이 팬 상처는 샘물과 빗물이 고여 들어 가재, 버들치, 도롱뇽이 사는 1급수 천주호가 되었다.
약 50m 높이의 화강암 직벽과 그 아래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물론 자연이 만든 풍광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그렇다고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본 것 같지 않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한편으로는 신선하게도 느껴진다.
아트밸리 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설은 조각공원이다. 조각공원에는 포천석을 활용한 조각 작품 수십 점이 설치돼 있고 작품 사이사이로 산책로와 전망대, 휴게카페,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다. 바위에 남아있는 발파공은 박새 등 작은 새들의 서식처가 됐다.
발파공이 무엇이냐면, 달고나 뽑기를 생각하면 된다. 별모양을 떼어내려고 경계선 사이사이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뚫었던 것처럼 돌산에서 돌을 채취하려면 사이사이에 발파공이라는 작은 구멍을 뚫은 후 이곳에 폭약을 넣고 폭발시켜서 돌덩어리를 떼어내게 된다. 아주 옛날 폭약이 없던 시절에는 쐐기가 폭약의 역할을 담당했다. 일종의 나무못이라고 할 수 있는 쐐기를 돌틈에 박아 넣고 여기에 물을 부으면 나무의 체적이 커지면서 그 팽창력으로 화강암이 분리되는 식이다. 쐐기는 동서양 공통의 방식으로서 피라미드를 만들 때도 이 방법을 썼다고 한다. 떨어지는 물만 바위를 뚫는 게 아니다. 나무가 머금은 물도 바위를 뚫는다.
돌산 정상에는 하늘공원이라는 전망대가 조성돼 있는데 이곳에서 조망하는 천주호의 풍광이 일품이다. 수변 공연장이랄 수 있는 호수공연장 외에 산마루공연장도 있다. 약 40m 높이의 화강암 직벽과 마주하고 있으며 매주말에 음악회, 뮤지컬, 마술쇼 등의 공연이 펼쳐진다. 간혹 결혼식이 열리기도 한다.
겨울철에는 너무 추워서 공연이 없지만 대신 눈 쌓인 천주호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겨울철 포천아트밸리에 눈이 쌓이면 이게 자연산인지 양식(?)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아트밸리 자체가 돌문화전시관의 야외 전시 시설이며, 별도의 건물 내에 조성한 돌문화전시관은 포천아트밸리의 안내 및 홍보관 정도의 기능을 하는 시설로서 아트밸리를 입장하기 전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소규모 전시관이다. 전시 내용은 화강암 그리고 포천석에 관한 설명, 포천아트밸리의 조성 과정, 다른 나라의 사례 등이다.
지역 내 혐오시설이 관광 매력물로 탈바꿈한 다른 나라의 사례가 인상적이다. 영국의 에덴 프로젝트와 스웨덴의 달할라(Dalhalla)가 소개돼 있다.
에덴 프로젝트는 도기를 굽는 흙을 채취하던 폐광산을 세계 최대의 온실로 조성한 사례이다. 돔처럼 생긴 온실이 연이어 있어서 마치 거대한 애벌레처럼 보인다.
달할라는 스웨덴의 성공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화강암처럼 유럽은 석회암이 건축이나 조각 용도로 많이 쓰이는데 달할라 역시 유명한 석회암 산지였다. 채석장이 용도를 다하고 폐채석장이 되었을 때 길이 400m, 높이 60m에 달하는 직벽만이 덩그러니 남았다고 한다. 이곳이 지금은 유럽 내에서 음향효과로 손꼽히는 4,0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이 되었다.
아트밸리 내에 전시관이 한 군데 더 있다. 공원 맨 위쪽에 있는 천문과학관.
포천아트밸리도 주변에 별다른 광원이 없기 때문에 천문관측 시설이 들어설 만한 적지이다. 1, 2층의 전시 시설은 자유 관람이지만 3층의 천체투영실과 천체관측실은 예약자만 관람할 수 있다.
아트밸리는 산지에 조성돼 있어서 관람하려면 약간의 경사길을 올라야 하지만 모노레일을 타고 편하게 왕복할 수도 있다. 가격은 왕복 4,500원, 편도 3,500원으로서 500m쯤 되는 운행거리에 비하면 조금 비싼 편이다.
왕복 요금 6,000원을 받던 때도 있었다. 운행료를 두고 포천시와 모노레일 위탁운영자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상황은 잘(?) 정리됐다.
포천아트밸리는 상처를 치유하면서 들어선 시설인데 이 정도 갈등쯤이야 봉합이 안 됐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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