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창(네이버 연재)

공평도시유적전시관

kocopy 2025. 3. 27. 16:30

자칫 사족이 되겠지만 전시관 이름에 붙은 ‘공평’은 공평, 불공평을 말할 때 그 공평이 아니다. 전시관이 위치한 동네 이름이다.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우정국로 26 센트로폴리스 지하1층)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본 <박물관의 창> 시리즈에서 소개한 박물관 중 가장 새 박물관이다. 지난 주 수요일, 9월 12일에 문을 열었으니 아직 1주일도 안 됐다.

센트로폴리스 건물 지하 1층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

단순히 새 것이어서가 아니다. 문 열자마자 가봐야 할 만큼 의미가 큰 박물관이기에 찾아간 것이다. 26층짜리 쌍둥이 건물의 설계 방향과 준공 일정을 바꿔버린 문제의(?) 전시 시설이기 때문이다.
사실, 도시 지역에서 개발 사업을 벌이다 땅 속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어려운 말로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확인되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다. 확인 즉시 공사는 중단되고 문화재보존조치가 내려진다. 현지보존하는 방안으로 최종 결정되면 사업계획 자체를 변경해야 하며 다행히(?) 이전보존이나 기록보존 조치 후 사업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흔히 말하는 금융비용 증가가 엄청나다. 그래서 문화재가 나왔다는 사실을 쉬쉬하며 남의 눈을 피해 문화재를 몰래 파괴해버리는 일이 알게 모르게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해 드러난 자리에서는 문화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을 개탄하면서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사업주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 돈이 얼만데…’ 하는 말들이 마치 보편적인 상식인 양 이야기되곤 했다.
그래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개관의 의미가 큰 것이다. 발굴 유적을 보존하는 일을 사업주의 손실로 인정을 하고 반대급부가 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사후 문화재 보존 및 보존 시설 운영의 부담도 덜어준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공평동 룰(Rules)이다.
①매장문화재의 위치를 고려하여 건축설계를 진행(혹은 변경)한다.
②매장문화재 보존 면적에 따른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③유적전시관 조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총괄 건축가와 협의한다.
④보존된 유적전시관을 사업주가 아닌 지자체(서울특별시)에서 운영한다.

 

공평동 1·2·4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가칭)센트로폴리스 건설 사업은, 유적을 원위치 전면 보존하는 조건으로 용적률 인센티브(999 ⇨ 1,199%)를 받아 15,800m²(약 4,780평)의 연면적을 추가로 확보했다. 박물관을 포함한 관련 시설 면적으로 약 1,915평을 내주었으니 추가 부담된 건축비를 제외한다면, 단순 계산해도 남는 장사이다. 박물관을 기부채납하며 유적, 유물의 보존 및 관리 책임도 서울시에 이관한 셈이 된다.
어떤가? 주는 게 있고 받는 게 있으니 이름처럼 ‘공평’한가? 마침 한자 표기(公平)는 같다.

A동 22층, B동 26층의 당초 설계안(출처: 간삼건축 홈페이지)
A동 26층, B동 26층으로 설계변경된 최종 건축안(출처: 센트로폴리스 홈페이지). 최고 높이는 113.8m로 변동이 없다.

센트로폴리스 부지에서는 과연 어떤 유물이 발견됐기에 ‘원위치 전면 보존’이라는 유례없는 보존 조치가 내려졌을까?
조선 초기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600년의 역사가 네 개의 구간(Ⅱ~Ⅴ문화층)으로 적층된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조선시대 견평방(堅平坊)이라 불리던 이곳은 종로 시전의 북편에 위치한 한양 최고의 번화가였다. 의금부와 전의감 등 관청이 자리하여 이들과 관련된 중인층이 다수 거주하였고, 순화궁, 죽동궁 등 왕가의 사가와 더불어 체제공, 송인명 등이 살던 정승집도 함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서울(당시 경성)의 중심지로서 화신백화점을 설계한 박길룡 건축사무소, 항일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공평동 1·2·4지구의 6개 문화층. Ⅰ층은 현재의 표토층이며 Ⅱ는 19세기~일제강점기층, Ⅲ은 18~19세기 조선후기층, Ⅳ는 16~17세기 조선중기층, Ⅴ는 15~16세기 조선전기층, 그리고 Ⅵ은 한양에 도시가 들어서기 전의 자연퇴적층이다.
문화층 퇴적 단면

이들 4개 문화층 중에 발굴 유물이 많고 보존 상태도 양호한 조선중기, Ⅳ문화층을 복원 대상으로 정했다.
전동 큰 집, 골목길 ㅁ자 집, 이문안길 작은 집을, 시계 반대방향 동선에 따라 차례로 복원 배치하고 그 위에 강화유리를 깔아 유구를 관람할 수 있게 하였다.
중인 이상이 거주하던 가옥 혹은 관청의 부속시설물로 추정되는 4동짜리 전동 큰 집은 축소모형으로 재현하여 대저택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
초석, 기단석, 고맥이석, 마당 박석, 배수로 등 가옥의 기초가 잘 남아 있는 골목길 ㅁ자 집은 VR을 통해 가옥의 내부를 상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온돌과 마루, 아궁이 등 가옥의 주요 시설이 모두 발굴된 이문안길 작은 집은 유구 위에 실물 크기의 집을 복원하였다.

보존된 유구는 강화유리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계단을 내려가서 유구와 같은 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전동 큰 집의 10분의 1 축소모형
골목길 ㅁ자 집 내부를 관람하는 VR 세트
이문안길 작은 집 복원 모형. 유구 위에 복원했으니 평면 기준으로는 실물이겠지만 전시실 높이 등을 고려한다면 입면 상으로는 축소 복원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발굴 유적의 중앙부에서 폭 2.1~3.05미터 내외의 골목길 3곳이 확인되었는데, 모든 발굴 층위에서 같은 위치에 같은 폭으로 있었다고 한다. 600년의 세월 동안 건물이 헐리고 다시 세워지는 이른바 ‘재개발’이 여러 번 있었지만 큰 골목을 중심으로 한 공간의 형태, 즉 터의 무늬는 그대로 유지돼 왔다는 점이 대단히 놀랍다.

오른편의 길은 일부러 조성한 관람동선이 아니다. 그 자리에 600년간 있었던 골목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가장 큰 의의는 ‘원 위치 전면 보존’이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원 위치’는 아니다. 원 위치가 되려면 복원대상 유구 위에 그대로 건물이 서야 하며 이때 유구 아래로는 지하층을 시설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유구의 수직 이동이 있었다. Ⅵ문화층 유구는 지표에서 2.3~3.4미터 내려간 해발 25.3미터 위치에 있었으며 유구가 복원된 전시실의 바닥면은 이보다 3미터 가량 낮은 해발 22.28미터이다. 그러므로 유구를 퍼내어 별도의 작업 공간에서 경화처리한 후 전시실로 다시 옮겨 놓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수평 이동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계단, 기계실, 주차 설비 등에 간섭된 구역은 위치가 조금 조정되었다.

건물을 기준으로 비교해본 발굴 위치와 복원 위치. 참고로 센트로폴리스는 지하 8층 건물이다.
전시실 벽면 유리 밖으로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2층 상가로 내려가는 사람들에게도 정면 유리를 통해 전시실 내부가 보일 것이다.

전시관이 위치한 센트로폴리스 건물은 현재 공사 마무리 중이다.

센트로폴리스는 업무용 오피스빌딩으로서, 얼마 전 영국계 부동산투자회사인 M&G리얼에스테이트가 1조원 벽을 넘기며 최고가 인수가격을 경신(1조 1,200억 원)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센트로폴리스 부지에는 지난 1981년에 건립된 공평빌딩이 자리하고 있었다. 재개발을 위해 공평빌딩을 철거했더니 건물의 구조물이 유구를 훼손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공평빌딩을 건립하기 위해 터파기를 하던 당시에도 틀림없이 유구는 눈에 띄었을 것이다. 발견된 유구를 애써 무시하며 누군가 이렇게 되뇌지 않았을까?
‘사업주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 돈이 얼만데…’

공평빌딩의 콘크리트 슬래브와 H빔이 유구를 훼손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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