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다시는 여행/너도나도 아는 유명 맛집

청목 - 경기 이천시 사음동

kocopy 2025. 1. 5. 09:50

이천쌀밥 한정식을 먹고 왔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 생산되는 쌀은 예로부터 밥맛이 좋아 임금님께 진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나들목을 나와 시내 방면으로 4km쯤 가면 쌀밥정식을 파는 집 대여섯 군데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죠? 이렇게 같은 음식을 파는 집이 몰려 있으면 유독 한 집만 사람이 몰린다는 불편한 진실!

그곳이 바로 '청목'입니다. 쌀밥정식집은 여기 말고도 이천 시내 곳곳에 수도 없이 많지만 어느 때부턴가 청목이 이천쌀밥집의 대명사입니다.

이천쌀밥정식

사실 청목을 소개하는 사진은 이거 하나면 끝입니다. 간장게장, 조기조림, 꽁치구이, 수육 보쌈, 돼지고기 장조림, 콩비지찌개, 야채쌈과 강된장, 우거지국, 잡채무침, 파래김, 데친 미역, 부침개, 겉절이, 각종 나물과 솥밥 그리고 솥밥에서 나오는 누룽지.

20가지가 넘는 반찬 하나하나가 맛이 괜찮다는 점, 이게 쌀밥집의 전부입니다.

잘 되는 집과 안 되는 집의 차이는 확실히 반찬 가짓수가 아니라 반찬의 맛입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입소문입니다. 쌀밥집은 청목이 맛있다고 소개받은 사람은 웬만해선 옆집 안 갑니다. 번호표 뽑고 1시간 이상 여기서 기다립니다. 청목 주변에 정이품도 있고, 얼마 전 아울렛 자리에 문을 연 태평성대도 있고, 그밖에 여러 집들이 있지만 이 집들은 비교적 한산합니다. 저도 처음엔, 하이닉스에서 시내 방향으로 2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가든이천공원'이란 집을 다녔었는데 다들 청목, 청목 하길래 한번 와봤다가 그 다음부턴 으레 이곳으로 옵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에는 기다리는 줄이 길면 옆집을 가봐야지! 주인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1급 주방장을 모시든가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겠지 보고만 있겠어? 정 안 되면 가격이라도 내렸겠지...'

반찬 그릇과 솥, 물 주전자, 빈 접시까지 모든 밥상마다 그릇이 30개가 넘을 텐데 이걸 매번 올리고 내리고… 홀 직원들 보통 힘든 일이 아니겠구만!

예, 직원들 고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릇을 일일이 올리고 내리지는 않습니다. 미리 세팅한 밥판(?)을 그대로 책상에 끼웠다가 빼내갑니다. 마치 요철처럼 밥상과 밥판이 암수가 딱 맞습니다. 청목에서 처음 시도한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서 처음 봤고, 요즘 한정식 차림은 어딜 가나 이런 방식으로 나옵니다. 아, 물론 1인분에 5만 원이 넘는 코스 한정식집은 예외입니다.

쌀밥집의 머스트해브는 하나 더 있습니다. "넓은 주차장"

손님의 99%가 자동차를 타고 오다 보니 주차장 확보는 필수입니다. 밥집 건물 뒤로 돌아가면 보이는 끝까지가 모두 주차장입니다.

 

이천쌀밥정식! 이게 과연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먼 근원을 따지자면, 밥과 여러가지 반찬을 한 상에 놓고 먹는 반상 형태가 이미 고려시대에 모양새를 갖춘 것으로 추정되고 또한 이천 지역에서 나는 쌀을 왕실에 진상한 것도 역사적 사실이므로 이천쌀밥정식의 역사는 짧게 잡아 수백 년 길게 잡으면 천 년 가까이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내력은, 오래된 병원을 통합한 후 그 병원의 설립일자를 학교의 개교일로 삼는 것만큼이나 아전인수격입니다. 쌀밥정식의 좀더 합리적인 원형은 일제강점기에 번성한 요리집(일명 요정, 오늘날 룸싸롱의 원조)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밥과 국에 수십 가지의 한국 반찬을 중심으로 일본음식과 서양음식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산해진미로 상다리가 휘어진다'는 경성시내 유명 요리집의 한정식 한 상. 이를 닮은 이천쌀밥정식을 앞에 받으면, 우리 한국사람은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보릿고개 DNA에 한풀이하듯 입이 쩍 벌어집니다. 그리고 쩝쩝 거리며 맛있게 먹습니다. 누릉지를 불린 눌은밥까지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글에서 몇 가지 내용을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