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릉이 백년을 더했다.’ 세종대왕의 능자리를 잘 써서 조선왕조가 백년을 더 이어가게 됐다는 뜻입니다. 결국 세종께서는 살아생전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치적을 남기신 것도 모자라 돌아가신 후에도 후손들에게 유익한 선물을 안겨주신 셈입니다.
1469년 예종 1년, 세종이 돌아가신 지 19년째 되던 해에 광주 대모산 자락(지금의 서울 내곡동)에 있던 세종대왕릉은 여흥(지금의 여주)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때부터 여주에는 세종 브랜드의 근거가 생겨났고 오늘날 대왕님표 여주쌀도 나오게 된 겁니다. 대모산자락 세종대왕의 능자리는 처음 모셨을 때부터 후손이 끊기고 장자를 잃을 땅이라는 의논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로도 문종, 단종으로 이어지는 세종의 장자는 단명하게 되었으니 풍수지리를 우습게만 볼 일도 아닙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영정시대 부흥의 기운을 보이던 조선왕조가 정조 사후부터 세도정치와 민란, 외세침탈을 거쳐 나라가 망하기까지가 근 100년이었다는 점입니다.
100이라는 숫자에 꽂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차라리 이 100년이 없었다면?’
이미 수명을 다한 왕조가 ‘영릉가백년’이라는 연명치료의 효험으로 코에 호스를 꽂은 채 100년을 더 이어살기보다는 차라리 정조가 돌아가신 직후에 400년 왕업의 막을 내렸다면, 이리 치이고 저리 얻어맞고 결국은 다 뺏겨버린 개화기의 험한 꼴도 안 봤을 것이고 조선을 이어 새로 들어선 왕조가 새 기운으로 19세기를 맞이했으니 최소한 그렇게 허망하게 나라를 빼앗기는 일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혹시 아는가? 얼리어댑터의 DNA를 지닌 우리 민족이 누구보다도 먼저 민주공화국을 열게 됐을지?
제가 말해놓고도 황당한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종대왕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암울했던 19세기 초반을 살아가던 우리 조상 중에도 누군가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죄 짓는 줄 알면서도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산소호흡기의 전원을 꺼버렸던 사람이나 혹은 집단!
영릉가백년의 효험을 지우기 위해 세종대왕릉에 손을 댄 어떤 이 혹은 무리!
시기로는 홍경래가 새세상을 꿈꾸던 1811년 무렵.
괜찮은 시나리오 소재 아닌가요?
찜! 퇴퇴퇴! 하늘땅별땅! 누구 손대지 마쇼! 머리 좀 식히고 6개월 뒤부터 집필 들어갑니다. ‘소설 가백년’ ^^
“더워서 그런 겁니다. 정말로 괜찮아요. 너무 염려는 하지 마세요. 전화해도 안 받을 겁니다.” ㅋㅋ
2017. 07. 08. 경기 여주시 왕대리 세종대왕 영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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