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을 떠나기 전날은 석가탄신일이었습니다.
집착을 버리라는 부처의 가르침이었을까요? 여행 당일 비 예보에, 교통대란 예보에, 여행 신청 저조까지… 여행인솔자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각종 부정적인 지표에 멘탈은 이미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하다 결국 한잔 하게 됐는데 부처의 가르침은 절집이 아닌 술집에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중생아, 집착을 버릴지니…'
"예! 집착 안 합니다. 그냥 최선을 다하며 여행 자체를 즐기렵니다."

'커피'로 테마를 붙인 3차 강릉 여행. 커피 한잔 마시고, 대구머리뽈찜에 막걸리 한잔 하고, 강릉 해변도 거닐고, 경포대에 올라 구경도 잘 하고 왔습니다. 이번에도 정원은 못 채웠지만 결국 20명이 다녀왔고 여행 당일에는 비도 오지 않았습니다. 교통 사정은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내려갈 때 3시간, 올라올 때 5시간 반. 10시 반에 종합운동장역에 내렸으니 아마도 자정 무렵에야 집에 도착하신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무슨 모델하우스 구경 온 사람들 같죠? 커피 한 잔 먹겠다고 기다리는 대기손님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 모두가 이 곳만의 커피맛을 알고 온 사람들일까요? 솔직히 저는 맛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정성껏 커피 내려준 바리스타가 서운해하겠네요.'

테라로사커피공장은 커피의 고장 강릉을 대표하는 전문점 중 한 곳입니다. 강릉시내를 벗어나 논밭 사이 농로를 지나야 나오는 한적한 장소에 자리하고 있지만 주말엔 문 열기(9시) 전부터 이미 손님들이 줄을 섭니다. 우리는 10시 10분에 도착했는데 30분을 기다렸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고서도 20분이 지나야 커피가 나오더군요. 핸드드립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란다고 하네요. 자칫 도떼기시장 되기 십상이지만 종업원 교육이 잘 돼 있는 편이라서 커피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재촉당하지 않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자, 이제 진짜 도떼기시장으로 갑니다. 그 이름도 아리송한 '옛카나리아'


이름만 듣고는 파는 음식을 절대 짐작 못합니다. 도대체 카나리아와 대구머리뽈찜이 무슨 관계랍니까?
머리 크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대구 대가리에 매운 콩나물 양념을 얹어 먹는 찜요리입니다. 1박2일이 다녀간 후 장사가 더 잘 되고 있지만 사실 옛카나리아에 손님들이 줄 서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이 집과 함께 알아두어야 할 곳은 역시 그 이름도 아리송한 '옛카네이션'입니다. 10년 전쯤, 강릉 출신 지인에게 소개받고 옛카나리아를 향해 가다가 옛카네이션과 헷갈려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두 집 사이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음~~ 논란의 소지가 있어 생략합니다. ^^

강릉항부터 시작되는 안목해변입니다. 이곳이 바로 자판기 바리스타로 유명한, 일명 자판기거리입니다. 마치 바리스타가 손 본 것처럼 다양한 커피를 준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때 100개가 넘었다는 자판기는 이제 20개 내외밖에 없고 대신 커피전문점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 끝 지점 송림이 시작되는 곳까지 이어진 거리에 횟집보다 커피집이 더 많습니다. 동서남해안 전국을 통틀어 이런 곳은 여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원들은 커피거리보다는 해변가가 더 좋은가 봅니다. "그렇죠? 커피 어쩌구 해도 강릉에 왔으면 역시 바다가 좋지요?"

"반갑습니다. 고객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자판기 커피 종류가 다양하기도 합니다.

관동팔경의 하나, 경포대입니다. 관동팔경은 금강산의 총석정을 비롯하여 청간정, 낙산사, 삼일포, 경포대, 죽서루, 망양정, 월송정(또는 시중대) 등 동해안을 따라 만날 수 있는 관동지방 8곳의 절경을 말합니다. 경포대에 올라서면, 얼음처럼 흰 비단을 십리에 걸쳐 펼쳐놓은 듯하고 모래를 헬 만큼 물이 맑다고 했는데 그냥 시적인 은유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일단 물이 탁해서 모래는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ㅠㅠ

경포 일대를 즐기는 방법 중 제가 강추하는 코스는 바로 '경포송림길'입니다. 경포대를 등지고 오른쪽 시계방향으로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으면 1시간 동안 피톤치드로 산림욕을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산길이지 거의 평지길에 가까워서 등산화 없이도 충분히 걸을 만합니다.


그런데, 가족 단위로 왔거나 앞으로 가족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전거 쪽으로 빠지더라고요. 강추는 강추일 뿐, 선택은 취향에 따라!
또 한 가지 코스는 경포호를 따라 가볍게 걷는 길입니다. 특히나 오늘처럼 햇살이 따갑지 않은 날은 더더욱 괜찮은 코스입니다.
경포호 구경을 모두 마치고 버스에 오른 때는 이미 4시를 넘어선 시각.
경포대에서 버스로 5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은 허난설헌 생가, 선교장, 오죽헌 등 세 곳. 우리는 이 중 식객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무대가 됐던 '아흔아홉칸 강릉 사대부댁' 선교장으로 향합니다.

선교장을 들어서서 맨 먼저 볼 수 있는 곳은 이 곳 활래정입니다. 문화재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고 건물 사방을 둘러가면서 구석구석이 참 예쁜 정자입니다. 연못까지 포함하여 사방 어디에서 렌즈를 잡아도 모두 예쁜 사진이 나옵니다.
본채에 들어서면 수많은 건물 중 눈에 띄는 곳은 열화당입니다. 열화(悅話)라는 이름처럼 '기쁨의 대화'를 나누는 곳이라는데 벽면이 모두 문으로 되어 있어서 이곳을 모두 들어올리면 마치 커다란 정자처럼 사방이 열린다고 합니다. 해석하기로는 이댁 주인의 호방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표현이라네요.

호방하고 자유롭기로는 이 쉼터만 한 곳이 있을까요? 한옥 단지 내에서 만나는 '흡연구역', 참으로 참신하고 호방합니다.
'에라, 떡 본 김에 제사나 지내자!'
선교장을 들어서서 왼편에 있습니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선교장까지 모두 구경하고 서울로 출발한 시각은 5시. 내심 8시 반에서 9시 사이에 도착할 걸로 예상했지만 실제 도착한 시각은 10시 반이었습니다. 무려 5시간 반이 걸린 셈입니다. 강릉에서 진부까지가 특히 막히더군요. 제가 여행인솔자만 아니라면 주문진에서 회 한 접시 먹으면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
당일 여행! 구경을 제대로 하자니 귀경길이 막히고, 서둘러 출발하자니 구경할 시간이 부족하고…
석가탄신일 다음날 카페지기에게 찾아온 번뇌였습니다.
'카페 '산너머살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30년대에서 선캄브리아기로 - 1.군산편 (0) | 2025.01.10 |
|---|---|
| 선심 쓴 김에 낙조까지 보여주시지! (0) | 2025.01.07 |
| 편백의 향기와 대숲에 이는 바람 (0) | 2025.01.07 |
| 낙동강이 감아 도는 하회, 내성천이 휘돌아 나가는 회룡포 (3) | 2025.01.05 |
| 물 고은 麗水, 꽃도 곱고 밤도 고와라! (2) | 2025.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