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책(?) 반일종족주의를 완독했다. 주로 지하철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읽었는데 무슨 금서라도 되는 양 달력 종이로 책표지를 만들어 책 제목을 가린 채 휴대했다.
반일종족주의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에는 못된 근성을 지닌 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전제가 이 책의 기본 시각이다. 일본을 절대악으로 간주한 채 일제강점기에 한국이 입은 피해를 견강부회식으로 과장하며 필요에 따라선 이미 청산된 것을 다시 들고나와 억지소리로 울부짖고 때론 삥까지 뜯어내는 양아치 근성이 몸에 배어 있는데 이런 못된 버릇을 이영훈 등이 작명하여 반일종족주의라 이름 붙이고 있다. 종족주의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반일을 우려먹는 근성이 DNA에 새겨져 있을 만큼 뿌리 깊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일제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는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환상적이고 광신적인 면모를 지녔기에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다른 의견, 예컨대 식민지근대화론 등을 내놓는 연구자는 심각한 신변 위협과 함께 부왜노(附倭奴)로 매도당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반일종족주의 근성 탓이라는 것이다. 이영훈에 따르면 이는 악한 풍습이고 천박한 문화고 장기적으로는 국가위기까지 초래할 망국병이라고 한다.
주로 통계 수치를 근거로, 일제하 35년이 일반의 선입견처럼 강제로 빼앗기고 핍박과 차별이 일상화된 암흑의 세월이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오히려 당시 조선(혹은 대한제국)의 역량으로는 해내지 못했을 근대화의 성과를 일제 덕(?)에 이루었음을 이제는 인정하자는 것이다. 책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학병도 노무자도 강제동원은 없었다. 개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자발적인 선택만이 있었다.
당시 학병과 정신대 지원을 독려했던 이광수, 윤치호, 김활란 등은 조선인의 자치권과 대우 향상을 위해 목청껏 피를 토하던 선각자들이다.
독도는 이승만 이전까지 문헌상으로나 정서적으로 우리땅이었던 적이 없다.
농사 지은 쌀을 빼앗기고 피죽만 먹었다는 조선인들은 오히려 이 기간 중에 체중이 늘고 키가 커지는 등 체위 향상이 있었다.
농업생산성도 높아지고, 기본적인 사회 기반 시설도 대부분 이 시기에 갖추어졌다 등등.
이영훈은, 본인 말대로라면 신변의 위협까지 느껴가면서 왜 이런 연구에 몰두하는 걸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일본 우익의 자금 지원이 아니고서는 딱히 동기를 발견할 수가 없다.
물론 이영훈은 한국사회의 잘못된 금기를 깨는 것이 책을 집필하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지만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이영훈의 집필 동기 중 한 가지에는 동의한다. 한국사회는 주류 의견에 토를 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일제강점기의 일부 긍정적인(?) 역할에 대한 연구는 내용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금기를 깬다는 차원에서 연구자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는 안 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다만 이들의 금기타파가 대단히 선택적이고 너무나 정파적이라는 점이 이들을 응원할 수 없는 이유다.
이영훈은 서문에서 이 책이 자신에게는 자유민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라 했다. 한국의 종족주의가 강요한 자기 검열 탓에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며 해방감을 맛보았고 앞으로 어떠한 터부도 두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다고 한다.
금기와 터부를 두지 않겠다? 그렇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이영훈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영훈은 한 장의 사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책에 적고 있다. 위안부 운동의 폭력적 심성에 관한 것인데, 저 만삭의 위안부 사진을 역사 교과서에 그대로 실어도 좋은가 하는 의문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고 토로한다. 사진을 보는 아이들이 받았을 분노, 절망, 적개심에 대해 장탄식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잔인한 진실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교육적 배려는 진정 한국의 역사 교육과는 무관한 것이냐 성토하고 있다.
만삭의 위안부 사진을 보는 아이들이 받을 분노, 절망, 적개심이 비교육적이라고 걱정하는 정도의 감수성이라면, 사실 이 나라 교육 현장에서 이영훈의 성토를 피해 갈 분야는 하나도 없다. 그간 비교육적 사례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널린 가운데 그가 목소리 높이는 이 특정 사례는 너무나 선택적이어서 쓴웃음이 난다. 지금껏 아이들의 분노, 절망, 적개심을 자극하고 들쑤시는 피폐한 애국심 교육이 세례처럼 쏟아지던 현장이 바로 한국의 교실이 아니었던가? 이 양반은 그걸 모른단 말인가?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라는 노래 가사를 입모아 외쳐대며 머리 속으로 섬뜩한 그림을 그렸던 근 50년 전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른다. 굳이 10세 전후의 코흘리개들에게 이 같은 집단 학살 선동을 해야만 했을까? 여기에 대한 이영훈의 생각은 어떨까?
이런 교육을 받은 내게, 교과서에 실린 만삭의 위안부 사진이 불러올 분노, 절망, 적개심으로부터 아이들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이영훈의 배려(?)는 맥락없는 뜬금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금기와 터부로부터 자유로운 연구를 하겠다는 취지만은 응원한다. 그것이 명실상부하다면 말이다. 다만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양두구육은 너무나 유치해 보인다.